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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핼러윈 참사 이면에 숨겨진 청년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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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21 23:03:28 수정 : 2022-11-21 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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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생활고… 하루하루 버티다
잠시나마 현실 잊으려 이태원으로
기성세대 ‘분장속의 절규’에 무심
마음껏 도전 가능한 사회 만들어야

필자는 한국에서 대학을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과 생업을 위해 8년 동안 거주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사회학을 공부하는데 막상 미국에 사회화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언어의 장벽은 물론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화적 소외감은 예상보다 컸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동화되기 어려웠던 문화는 핼러윈이었다.

핼러윈은 켈트족이 신에게 제의를 올리며 악령을 쫓는 데 악령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 악령처럼 자신을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풍습에서 기원한다. 기독교 전통이 있는 모든 국가에서 핼러윈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고 미국과 그 영향이 상대적으로 큰 나라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종교적 의미보다는 축제의 형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핼러윈 때 미국 어린이는 분장하고 이웃집을 다니며 “trick or treat”,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면 ‘간식 안 주면 장난칠 거야’라고 외치며 사탕을 얻는다. 어른들은 늙은 호박에 모양을 내어 집 주변을 장식하고 주로 청년 세대만 분장을 하고 파티를 하는 광경이 필자가 경험한 핼러윈이었다.

이제는 종교적, 역사적 의미도 별로 없는데 굳이 귀신 분장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핼러윈 행사에 끼고 싶지 않았다. 참여했어도 공감대를 찾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30년간 핼러윈 없이 살았던 평범한 성인에게 핼러윈은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해준 미국적 습속 가운데 하나였다.

그 이후 핼러윈을 잊고 지내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 10월 말에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핼러윈 행사가 성행한다는 기사를 보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지만, 미국에서 핼러윈 경험을 했던 청년이 그렇게 많을 리 없었고, 설령 어릴 때 영어 유치원 등에서 경험한 사람이 성장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핼러윈을 즐긴다는 건 내 경험상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현상이었다.

핼러윈 청년문화의 중심지는 바로 이태원이다. 본래 이태원은 미군 부대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외국문화, 특히 미국문화의 그림자가 짙게 반영된 지역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핼러윈 시기 이태원에 외국인은 물론 20대와 30대가 인산인해를 이루는 현상을 관찰하며 단순한 문화 이상의 사회적 함의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10월29일 158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 소식이 전해졌다. 대개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언론과 사람들은 국가의 잘못을 지적하곤 한다. 정부가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직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이라 지휘체계의 무능함, 일선 경찰의 잘못, 구청의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책임 소재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지점이 있다. 왜 청년들이 핼러윈 행사를 위해 이태원에 그렇게 많이 모였느냐는 것이다. 물론 호기심이나 우연으로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청년들은 형형색색 분장을 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모임과는 다른 외양과 마음가짐으로 이태원에 모였다. 목적과 배경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청년들이 이태원에 모였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은 단순히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모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버티기 급급한 현실에서 분장을 통해 내 모습을 잠시라도 잊는 핼러윈이기에 모였다. 기성세대는 공감하기 어려운 청년만의 상황을 나눌 수 있는 동년배가 있기에 이태원에 모였다. 결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좌절에서 하루 만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핼러윈 시기에 이태원에 함께 모인 것이다.

통계를 살펴보면 청년들이 처한 상황의 심각함을 헤아릴 수 있다. 15~29세의 체감경제 고통지수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고 체감 실업률 역시 가장 높다. 부채증가율 역시 다른 연령대에 비해 훨씬 높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경험이 필요한 청년이지만 코로나19가 초래한 비대면 환경과 사회적 격리는 큰 장벽이 되었다. 아파트 가격이 내려간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월세 보증금도 마련하기 힘든 청년에게는 저 세상 이야기다. 20대와 3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이미 수년째 자살이다.

물론 모든 청년이 핼러윈을 통해 현실을 벗어나려 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올해 참사가 있기 몇 년 전부터 수많은 청년이 핼러윈에 그 좁은 이태원 거리에 모여 왔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정을 알리기 위해 모인 건 아니지만, 어느 누군가는 핼러윈에 이태원에 모였던 청년의 속마음과 상황의 절박함을 알아차렸어야 한다. 기성세대의 한 명인 필자도 분장 속에 숨겨진 절규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달았다.

세계화와 자국중심주의의 모순적인 글로벌 환경 변화의 물결 가운데 우리는 지금 놓여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기존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에 계속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청년의 지치지 않는 열정과 담대한 시도는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동력이다. 청년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우리 모두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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