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길가에 버린 나무의자
녹슨 못이 삐걱 다리를 붙잡고 있다
지나가던 빗방울이
후드득 피운 물꽃을 금세 거두어가고
구름 속에서 쭈뼛대던 햇살 슬며시 다가와
의자에 조용히 걸터앉는다
곁에서 지켜보던 붉나무
햇살의 무릎에 이파리 한 장 팔랑 내려놓는다
고욤나무 가지에 딱새 한 마리
한가로운 오후의 풍경을 바라보고
마른 잎 매단 칡넝쿨 긴 그림자
바람이 등을 밀어 앉히려는데
금수산 다녀오던 등산객이
털썩 무거운 엉덩이를 올려놓는다
화들짝 눌린 햇살 한 줌
이파리 한 장도 뭉개졌다
기웃대던 딱새가 푸드덕 날아간다
의자가 끙, 앓는 소리를 낸다
-시집 ‘둥근 방’(지혜) 수록
●이승애 약력
△1961년 청도 출생. 시집으로 ‘둥근 방’. ‘문학저널’ 신인상, 충북여성문학상, 청풍명월전국시조백일장 등 수상. 조은술세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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