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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연설문 찢고 위안부 결의문 앞장… 美 정치판 바꾼 ‘센 언니’ 퇴장 [뉴스+]

, 이슈팀

입력 : 2022-11-18 17:00:00 수정 : 2022-11-18 19: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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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유일’ 女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정계 은퇴
유리천장 깨…‘여성참정권’ 상징 흰옷 입고 퇴진 선언
트럼프 탄핵안 처리·멕시코 국경 장벽 예산 거부 주도
“엄청난 고통 잊지 않을 것” 위안부 결의안 통과 기여
中 반발에도 8월 대만行…韓에선 ‘펠로시 패싱’ 논란도

“가정주부(homemaker)에서 하원 의장(House Speaker)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 정치사상 첫번째 여성 하원의장이자, 유일한 여성 하원의장이었던 낸시 펠로시(82)가 17일(현지시간) 2선 후퇴를 선언했다. 20년간 민주당을 이끌어온 펠로시 의장이 중간선거 패배 책임을 안고 차기 지도부 선거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당내 세대교체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날 여성참정권을 상징하는 흰색 재킷을 입고 하원 본회의장 발언대에 선 펠로시 의장은 “이제 우리는 대담하게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시간이 왔다”고 말하며 지도부 퇴진 의사를 밝혔다. 그의 왼쪽 가슴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안을 처음 처리할 때 착용했던 ‘공화국의 지팡이(Mace of the Republic)’ 브로치가 달려있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는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내년 1월 개원하는 다음 의회에서 당 지도부 선거에 나서지 않고 평의원으로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하원 민주당은 오는 30일 지도부 선거를 할 예정이다. EPA연합뉴스

◆펠로시 정치경력 35년이 모두 역사

 

펠로시 의장은 1940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볼티모어 시장과 민주당 하원 의원을 지낸 부친 등을 보면서 자랐고, 트리니티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하고 금융업에 종사하는 남편 폴 펠로시를 따라서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기면서 다섯 자녀 육아 및 가사에 한동안 전념했다.

 

펠로시는 미국 진보 성향의 도시 가운데 한 곳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당원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민주당 전국위 위원, 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장, 샌프란시스코 민주당 전당대회 준비위원장, 민주당 상원선거위원회 재무위원장 등 여러 당직을 역임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연방하원의원 필립 버 부부가 별세한 뒤 후계자로서 1987년 캘리포니아 5구 선거에 출마해 연방하원의원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2007년 4월 18일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국무회의실에서 초당파 및 양원 지도부를 만나고 있다. 왼쪽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EPA연합뉴스

정계에 입문한 펠로시 의장은 이후 여성 정치인으로서 미국 의회의 역사를 새로 썼다. 미국 주요 정당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하원 원내대표에 당선돼 2003년부터 민주당을 이끌었다. 또 2006년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조지 W 부시 정부 때인 2007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유리천장’을 깨고 하원 의장에 당선됐다.

 

민주당이 오바마 정부 때인 2010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서 2011년 1월 하원 의장직을 내려놓았던 그는 민주당 원내대표에 다시 선출돼 하원에서 민주당을 이끌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펠로시는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한다면 은퇴하려는 계획이었으나, 트럼프가 당선되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은퇴 결정을 보류했다. 이후 2018년 민주당이 하원에서 다수당이 되면서 하원의장에 재도전, 당내 세대교체 여론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두 번째 하원의장 임기를 시작했다.

 

현재 82세로 고령인 펠로시는 그동안 하원의장직을 무난히 수행해왔다는 평가에도 당내에서 세대교체 압박을 받아왔다. 또 중간선거 직전에 불거진 남편 폴 펠로시 피습 사건도 그의 은퇴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펠로시 의장이 ‘아름다운 퇴장’을 선언하며 발언대를 내려오자 이를 지켜본 민주당 의원들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2013년 9월 3일 존 베이너 오하이오 하원의장(왼쪽)과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캘리포니아) 옆에 앉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시리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에 앞서 언론과 이야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위안부 결의안·오바마 케어·트럼프 탄핵안 등 업적

 

펠로시는 하원의장으로 재임한 20년 동안 역사에 남을만한 법안을 여러 차례 처리했다. 그는 첫 번째 하원의장 때인 2007년 7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 통과에 큰 역할을 했다. 하원 외교위를 통과한 결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인 6월 그는 성명을 내고 “결의안을 통과시켜 우리가 위안부들이 겪은 엄청난 고통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정부 때는 이른바 오바마케어(ACA·전국민건강보험법)가 처리되는 데 그의 공이 컸다는 평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0년 오바마케어 법안에 서명하며 “미국 의회 역사상 가장 훌륭한 하원의장 중 한 명이다”라고 펠로시 하원의장을 치켜세울 정도였다.

 

펠로시 의장은 두 번째 하원 의장 재임 때는 민주당의 대표 정치인으로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여당을 전방위로 견제하며 ‘트럼프의 앙숙’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2019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예산안에 국경장벽 예산을 포함하자, 미 역사상 최장기간 연방정부 셧다운을 불사하면서까지 이를 막아냈다. 당시 미 언론들은 “펠로시가 트럼프의 콧대를 꺾어버렸다”고 썼다.

2021년 1월 13일(현지시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하원에서 가결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서명을 한 후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2020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했을 때 악수를 하려고 자신이 내민 손을 거부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을 마친 직후 의장석에서 연설문을 찢은 장면도 유명하다. 펠로시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진실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기 때문에도 나도 그의 연설문을 찢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원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두 번이나 가결했고, 이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미친 낸시”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펠로시 의장의 지난 8월 대만 방문은 미·중간 갈등을 고조시키며 화제가 됐다. 그는 대만을 방문한 후 곧바로 우리나라를 찾았으나, 윤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만나지 않으면서 ‘펠로시 패싱’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펠로시 효과 계속…美 정계 ‘여성파워’ 나날이 커져

 

펠로시 의장이 정계에 입문한 이후 미국 정치계에 ‘여성파워’는 나날이 커졌다. 그가 당선된 1987년 미 100대 의회 하원에 여성의원은 23명에 불과했지만, 이번 118대 의회는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최대 149명의 여성 당선자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오른쪽)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연설 후 동료 의원들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DC=AP연합뉴스

17일 미 선거분석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538)에 따르면 435명을 선출하는 미국 하원 선거에서 6개 선거구의 개표가 아직 진행되는 가운데 여성 당선자는 최소 145명에서 최대 149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역대 최대 기록인 147명을 경신할 가능성이 있다.

 

2018년에는 여풍이 민주당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왔고 2020년에는 공화당에서 역대 가장 많은 여성 하원의원을 배출했던 점과 비교하면, 여성 의원 성장세가 주춤한 것이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의 여성 후보 공천이 이전보다 줄었고 현역 여성 하원의원들이 본선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숫자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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