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가 행세하며 수억원 뜯어내
도박으로 유인하는 신종 수법도
국회 ‘복권법 처벌’ 개정안 발의
직장인 A(38·여)씨는 지난 7월 평소 즐겨 찾던 맘카페에서 “분석을 통해 당첨 확률이 높은 로또번호를 제공해준다”는 글을 보게 됐다. 매주 로또를 사지만 5000원 당첨도 힘들던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로또번호 분석가라고 자칭한 B씨와 연락하게 됐다. B씨는 “매주 로또번호를 무료로 공유해주는 것은 물론 프로토(스포츠토토에서 발행하는 스포츠 경기 승무패 등 예측 도박) 분석도 해준다”며 A씨를 500명이 참여하고 있는 단체대화방에 초대했다. 단체대화방에서 B씨가 “○○회원님이 3000만원을 벌었다”고 운을 떼면 다른 참여자들이 “축하한다”며 응원해주는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A씨는 결국 지난 9월 B씨에게 2억원을 송금했다. 로또 당첨 확률이 높은 번호를 분석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리니 그 전에 사다리타기 게임(불법 도박)을 통해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이후 B씨는 여러 이유를 대며 추가 송금을 요구했고, A씨는 대출금 1억8000만원을 포함해 총 4억8000만원을 보내고서야 사기임을 깨달았다.

A씨는 “현재 대출금 월 상환액 600만원을 넘어 감당이 안 돼 개인회생을 진행 중”이라면서 “평생 단 한 번도 연체를 해본 적 없을 정도로 성실하게 살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후회했다.
경기 불황 속에 서민들의 절박한 심리를 악용하는 로또 분석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당첨 확률이 높은 번호를 찍어주겠다고 유혹해 거금을 편취하는 식이다.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을 살펴보면, ‘로또번호를 분석해 제공해주겠다’는 취지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당 홍보 글에 적힌 번호나 대화방 링크 등을 통해 연락을 취해보면 이들은 포토샵 등으로 조작한 ‘빅데이터 국가기술자격증’ 사진을 송부하며 전문성을 강조한다.
이들의 사기 수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돈을 받고 로또번호를 주겠다는 이들은 6개월에서 1년 등의 기간을 정해 “기간 내에 최소 로또 2등에 당첨되지 않는다면 100% 가입 금액을 환불해준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기망한다. 가입비는 수백만원이다.
실제 지난 8월 경기북부경찰청은 2012년 7월부터 지난 6월까지 복권 당첨번호 예측 서비스 사이트 92개를 운영하며 피해자 6만4104명으로부터 약 607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는 52명을 검거했다. 이들이 인공지능(AI) 분석을 통해 예측했다고 주장한 번호는 조직원 5명이 임의 조합한 번호에 불과했다.

A씨 사례처럼 ‘로또 당첨’을 내건 후 막상 호기심에 문의하면 도박으로 유인하는 수법도 활개를 친다. 1500만원을 잃은 또 다른 피해자 C(45)씨는 “단체대화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니 나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됐다”며 “알고 보니 ‘바람잡이’ 역할을 하던 한패였다”고 했다.
이처럼 ‘로또 분석’을 내건 사기가 기승을 부리자 해당 행위를 복권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로또 당첨 예상번호를 제공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복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신 의원은 제안 이유로 “복권사업은 국가가 복권 판매를 통해 조성한 기금으로 저소득층, 국가유공자, 소외계층 등을 지원하는 공익사업이기 때문에, 유사·불공정 행위에 대한 엄격한 차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