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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덕분에 내 아들 살아" 어느 여성의 감동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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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17 17:00:00 수정 : 2022-11-17 16:35:17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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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26주차에 태어난 이른둥이 아들
1963년 이른둥이 아들 사별한 케네디
美 의료진의 '이른둥이 질환' 연구 독려
오늘날 생존율 약 100%의 '기적' 일궈

“케네디 대통령님 덕분에 제 아들은 살아날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임신 26주일 만에 이른둥이(미숙아)를 출산한 미국 여성이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1961∼1963)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65)와 우연히 만나 고마움을 전한 사연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이른둥이 관련 질환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건 케네디 행정부 시절인데, 여기엔 케네디 집안의 아픈 가정사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뉴욕에 사는 홀리 조던과 그의 아들. 미 주간지 ‘피플’ 홈페이지 캡처

16일(현지시간) 미국 주간지 ‘피플’에 따르면 홀리 조던은 뉴욕에서 남편, 생후 약 1년 된 아들, 그리고 반려견 월리와 함께 사는 평범한 여성이다. 조던은 피플에 기고한 글에서 올해 4월 부활절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던 중 뜻밖에도 캐롤라인 케네디와 마주친 얘기를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호주 주재 미국대사로 임명된 캐롤라인은 당시 한창 부임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다.

 

◆임신 26주차에 태어난 이른둥이 아들

 

“그 여성은 굉장히 낯이 익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저는 그분이야말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제 아들이 ‘당신의 남동생 때문에 살아있다’고 꼭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홀리 조던)

 

조던이 공개한 사연은 이렇다. 그는 2021년 생애 처음으로 임신을 했다. 처음엔 그냥 좋기만 했다. 그런데 24주차가 되어 산부인과에 갔을 때 ‘조산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엄마의 혈압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였다. 그동안 몸무게가 1㎏도 안 되는 이른둥이들이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는 모습을 언론 보도로 접하긴 했으나, 막상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결국 지난해 12월 조던은 임신 후 26주일 하고 4일 만에 제왕절개로 아들을 낳았고, 출산과 동시에 아기는 엄마 곁 대신 신생아집중치료시설(NICU)로 보내졌다.

 

이후 부부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조던은 아들이 있는 NICU 곁을 남편과 교대로 지키는 일에 익숙해져야 했다.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고 아들의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다.

 

“아들이 좀 더 크고 안정적으로 되면서 저는 아기와 서로 피부를 맞대고 안아보기 시작했어요. 날마다 몇 시간 동안 아기는 제 가슴에 기대어 잠을 잤죠.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동안에도 그 심장 박동수와 혈중 산소 농도가 몇 번이나 곤두박질쳐 경보가 울리곤 했거든요.”(홀리 조던)

 

캐롤라인 케네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장녀다. 현재 호주 주재 미국대사를 맡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케네디, 이른둥이 질환 연구 지시하다

 

부활절을 앞두고 부부는 모처럼 센트럴파크를 산책했다. 케네디 대통령 부인의 이름을 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호수를 지날 무렵이었다. 참으로 우연히 케네디 부부의 장녀 캐롤라인과 마주쳤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조던은 다짜고짜 감사를 표했고 캐롤라인은 왜 그런지 궁금해했다. 조던은 그가 알고 있는 케네디 집안의 아픈 가정사에 관한 얘기부터 꺼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1961∼1963 재임). 이른둥이로 태어난 둘째아들 패트릭을 잃은 후 미 국립보건원(NIH)에 이른둥이 질환 연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있던 1963년 8월7일 둘째아들 패트릭이 태어났다. 캐롤라인보다 6살 어린 남동생이었다. 패트릭 또한 재클린이 임신 34주차에 낳은 이른둥이였다. 미처 폐가 발달하지 않은 채로 세상에 나온 패트릭은 숨을 잘 못 쉬었다. 신생아 호흡곤란증후군(RDS)이었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아이인 만큼 미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의료진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패트릭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했고 결국 이틀 만인 8월9일 숨을 거뒀다. 케네디가 괴한의 저격으로 사망한 것은 그로부터 겨우 3개월 뒤인 1963년 11월22일의 일이다.

 

암살 전 케네디는 ‘왜 내 아이를 살리지 못했나’ 거듭 생각했다. 당시 이른둥이 질환을 연구하는 의사는 소수에 불과했다. RDS의 경우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다들 손을 놓고 있었다. 케네디의 강력한 지시로 미 국립보건원(NIH)은 이른둥이 질환 연구에 착수했다. 막대한 예산이 연구에 투입됐다.

 

◆이른둥이 생존율 100%의 기적 일궈내

 

조던은 캐롤라인에게 “당시 시작한 연구 덕분에 이른둥이를 위한 인공호흡기가 나왔고, 또 폐의 빠른 성숙을 돕는 활성제 치료법이 개발돼 RDS를 이길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캐롤라인은 “그렇군요.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어요”라고 화답했다. 패트릭이 사망했을 당시 누나 캐롤라인은 고작 6살이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가족사진. 부인 재클린 여사가 안고 있는 딸이 캐롤라인 케네디, 옆은 3살 어린 남동생 존 F 케네디 2세(1999년 사망)다. 막내이자 둘째아들인 패트릭은 1963년 이른둥이로 태어나 이틀 만에 숨졌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매년 40만명의 아기들이 미국에서 이른둥이로 태어납니다. 패트릭,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님 덕분에 이들은 살아남는 것은 물론 자손을 낳아 번창할 기회도 갖게 됐죠. 1963년만 해도 패트릭처럼 임신 34주차에 태어난 이른둥이의 사망률은 거의 100%였습니다. 오늘날 34주차 신생아들은 생존율이 거의 100%랍니다.”(홀리 조던)

 

캐롤라인과의 짧은, 하지만 강렬한 만남이 있은 뒤 조던의 아들은 NICU 입원을 끝내고 비로소 집으로 갔다. 의료진이 줄을 서서 떠나는 조던 가족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졸업식에 쓰이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가족, 의료진 할 것 없이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 아들은 건강하고 행복한 아기랍니다. 기쁨과 호기심이 넘치죠.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이정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매번 들리는 웃음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끼리 센트럴파크에 자주 갑니다.”(홀리 조던)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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