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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벗을 자유 달라”… 이란인 분노에 지구촌 연대 시위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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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05 20:54:12 수정 : 2022-11-06 00: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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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반정부 항쟁에 세계인들 가세

‘아미니 의문사’ 계기로 체제 반감 폭발
청년 주축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동참
“여성, 삶, 자유” 외치며 격렬 저항 벌여

SNS서 히잡 불태우고 ‘단발 퍼포먼스’
獨 베를린 도심 10만명 모여 응원 집회
韓 정치권은 침묵… “더 큰 관심 가져야”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군부의 최후통첩에도 50여일째 계속되고 있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가 22세 나이에 숨진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이란 민중의 분노가 ‘이번에도 실패하면 이란은 끝’이란 위기의식과 결합하면서 항쟁의 동력이 되고 있다.

 

◆군부 유혈진압 최후통첩에도 시위 계속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IRGC) 호세인 살라미 총사령관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는 미국과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의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며 “시위대는 이제 거리로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부의 무력진압 위협에도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이 촉발한 2009년 시위 이래 13년 만의 최대 규모로 확산하고 있다.

국민 자유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50여일간 계속되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세계인이 연대 의사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에는 지구촌 곳곳에서 이란 정부를 압박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이란 정부에 항의 표시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여성. 텔아비브=AFP연합뉴스

시위대가 외치는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는 이번 시위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히잡을 벗을 권리로 시작한 시위는 인권과 자유를 요구하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히잡 의무화가 여성을 속박하는 굴레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자유를 박탈하고 억압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가 세대, 성별, 지역, 계급을 뛰어넘는 전민(全民)항쟁 양상으로 발전한 배경이다.

청년을 주축으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국적으로 정권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10대 학생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미성년자를 폭력 진압하는 당국에 저항해 전국적인 교사파업도 일어났다.

아미니 죽음 40일째인 지난달 26일엔 묘소 주변에 1만여명의 시위 인파가 모이고, 30여개 도시에서 동조시위가 벌어졌다. 이란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는 고인의 영혼이 사망 40일이 되는 날 잠시 돌아온다고 믿어 특별히 추모한다.

당국은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에 따르면 지금까지 최소 277명이 당국 진압에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체포된 사람은 30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수도 테헤란에서만 1000명이 경찰관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혁명수비대와 정보부는 히잡 의문사 사건을 최초 보도한 여성 저널리스트 2명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스파이 혐의로 체포하기도 했다. 스파이 혐의는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로 당국이 강력한 언론 탄압을 전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 쾰른에 시위대 지지를 외치는 수천명의 시민. 쾰른=AP연합뉴스

이란에서는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 후에도 대통령선거 부정 의혹 항의시위(2009년), 경제정책을 규탄한 시위(2017, 2019년) 등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왕정을 붕괴시킨 경험이 있는 이란 민중은 과거의 실패를 실패로 규정하기보다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으로 본다고 한다. 이란 전문가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비록 사람들이 많이 죽고 다들 안 될 거라 얘기해도 결국 이렇게 하면서 1979년에도 해내지 않았느냐며 서로를 독려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 집권층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란 인터내셔널 방송에 따르면 여러 비공식 보고에서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시위에 이란 관리들이 가족을 해외로 대피시키고 있다”고 한다. 현재 테헤란 같은 대도시에서는 경찰 단속이 느슨해져 여성 절반 정도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공권력도 민중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구촌, 함께 머리카락 자르며 연대

이란인 투쟁에 세계인도 연대하고 있다. 여성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열리는 집회 현장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히잡을 불태우고 본인 머리카락을 잘라 깃발처럼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페르시아 문화권에서 단발(斷髮)은 “권력자의 권능보다 분노가 더 강할 때 나타나는 전통이자 슬픔과 항의 표시의 상징”(영국 작가 샤라 아타시)이다. 2016년 스파이 혐의로 6년간 이란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 3월 석방된 이란계 영국 여성 나자닌 자가리래트클리프는 9월28일 스스로 머리카락 자르는 영상을 영국 BBC방송에 보내며 “우리 어머니와 딸들, 독방에 갇히는 두려움, 조국의 여성들, 그리고 자유를 위해”라는 말을 남겼다.

 

독일 베를린 도심에는 지난달 22일 이란 시위에 힘을 싣기 위해 10만명에 육박하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독일 전역과 유럽 각국에서 동참자가 집결하면서 당초 예상(5만명)보다 두 배나 되는 사람이 참여했다. 이는 이번 사태로 제3국에서 열린 집회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인권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는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인간사슬을 만든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이란 시위대를 지지하고 강권탄압하는 정권을 규탄했다. 오타와=AP연합뉴스

서방 정부와 유엔 차원에서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달 첫 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이란 정부의 시위 탄압을 의제에 올려 인권유린 실태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이란 정부에 “여성의 권리를 포함한 국민의 합법적인 불만을 해소하라”며 “(시위대에 대한) 모든 부적절한 무력 사용도 피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과 독일은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이란 사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 교수는 “미성년자가 많이 숨져 아동 관련 국제기구 등에서 성명을 내주면 큰 압박 효과가 있는데 아직은 이란 국내의 반정부 시위라 반응이 조심스럽다”며 “한국도 이번에 이란 클라이밍 선수 사건(히잡 미착용 후 연락두절됐다가 귀국한 사건)으로 긴박해졌는데 전혀 정치권 반응이 없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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