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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왜 갔냐” 조롱·사고 영상 유포… 재난의 그림자, PTSD [이태원 핼러윈 참사]

, 이태원 참사

입력 : 2022-11-01 06:00:00 수정 : 2022-11-02 10: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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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PTSD 발생 우려… 대처 방안은

대형 재난이 주는 공포·무력감
우리 몸이 지닌 대응능력 압도
참사 영상 접 한 시민들 큰 충격
또래 친구 잃고 트라우마 겪어

전문가 “잠 못 자거나 소화불량
2주 이상 지속 땐 상담 받아야”
복지부 ‘통합심리지원단’ 구성
韓총리 “사고장면 공유 자제를”

150명 넘는 젊은 넋을 속절없이 앗아간 이태원 압사 참사 때문에 한국 사회에 또다시 대규모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발생 경고가 켜졌다. 참사 현장을 목격한 이는 물론 끔찍한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 잠깐의 동영상을 접한 것만으로도 심적 불안감이 나타날 수 있다.

심리상담 제공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인근에 설치된 심리지원 현장상담소를 찾은 한 시민이 상담가와 이야기하고 있다. 정부는 참사 유가족과 부상자, 목격자, 일반 시민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을 우려해 심리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재난의 그림자, PTSD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런 재난 상황 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PTSD는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사건을 당하거나 목격한 후 발생하는 불안장애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겪으면 사람의 뇌는 ‘회복’하도록 몸의 기능을 조절한다. 하지만, 이런 대형 재난이 주는 스트레스는 우리 몸이 지닌 스트레스 대응 능력을 압도해버려 공포감이나 무력감을 갖게 한다.

 

대표적인 증상은 △소화불량 △두통과 어지럼증 △온몸에 힘이 빠지는 무기력감 △수면 장애 △사고 경험 반복 회상 △과민상태 등이다. 몸이 떨리고 근육이 긴장돼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의학계에선 단순 목격자가 PTSD를 경험하는 확률은 낮다고 본다. 통계적으로는 10% 밑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에 우울증 등 정신 건강이 취약했던 경우라면 이런 트라우마가 생기고, 회복도 느릴 가능성이 높다.

 

또 통설과 다르게 이번 비극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지켜본 시민들은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특히 또래 친구를 잃었거나 이태원을 방문했던 청년들은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광장 합동분향소가 문을 연 직후 분향한 곽모(29)씨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회사에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 연차를 내고 왔다”고 말했다. 이어 “지인 중 이번 사고로 사망한 사람도 있어서 장례식장에 가볼 예정”이라고 했다.

 

곽씨는 사고 전날인 금요일에 이태원을 방문했고 사고가 났던 골목길도 지나갔다. 그는 “원래 토요일에 가려고 했는데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다가 전날 가게 됐다”면서 “내가 저 자리에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사망한 분들께 미안하기도 하고, 감정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정모(27)씨도 “사고 당시 홍대에 있다가 아버지한테 이태원에 있냐는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이후 사고 영상을 보고 나니 계속 생각이 난다. 세월호 참사를 목격해서 그때처럼 힘들다”고 말했다.

◆“2주 이상 스트레스면 상담필요”, 위기상담전화(1577-0199)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명재 교수는 “사고 직후에 잠을 못 자고, 장면이 떠오르고, 소화가 안 되는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일반적으로는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아도 며칠 내 회복하는데, 문제는 이런 스트레스 반응이 2주 이상 지속하는 경우다. 계속해서 사고 장면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면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남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과 석정호 교수는 “호흡을 깊게 하고 평상시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안정화 기법은 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평소 술과 담배를 하던 사람이라면 재난 후 흡연과 음주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과음과 흡연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아무래도 PTSD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건 사고 경험자와 사망자 유족이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한 소방관과 경찰관 역시 마음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다. 이런 고위험군은 안정을 취하며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 백 교수는 “사고에서 겨우 빠져나온 부상자들은 종일 뉴스가 나오는 데다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해서 뉴스를 찾아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반복적, 자극적 노출은 긴장과 불안을 높일 수 있다”며 “당분간 뉴스를 피하고 잘 자고, 잘 쉬면서 신체 건강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에 영상과 사진을 유포하거나 보는 것은 자제할 것을 강하게 당부했다. 이런 사진 유포는 무엇보다 이미 큰 스트레스를 경험한 피해자에 2차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2014년 세월호 비극 때 현실화한 바 있다. 백 교수는 “세월호로 인한 재난 정신건강을 연구한 결과 일부 유족은 8년간 정신건강 치료를 받아야 했다”며 “유언비어로 인한 추가적인 스트레스는 PTSD가 오랫동안 지속하는 역할을 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 역시 ‘거기를 왜 갔냐’ 등의 조롱이나 사진을 통한 명예훼손이 이뤄지면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 성숙한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31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에서 열린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심리 지원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국가트라우마센터 내에 서울과 용산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참여하는 ‘이태원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했다. 또 이번 사고로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일반 시민 등을 위해 현행 서울시 자살예방을 위한 상담전화(1577-0199)에서 관련 위기상담을 지원할 계획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사상자 혐오 발언이나 허위조작 정보, 자극적인 사고 장면이 공유되고 있다. 절대 자제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정진수·조희연·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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