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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주 지자체장 의중 따라 ‘롤러코스터’… ‘운영난 심화’ 우려 [이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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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30 11:34:14 수정 : 2022-10-30 13: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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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바람’ 타는 도·시민 축구구단들

후원금 의혹 성남FC 존폐위기서 ‘회생’
市, 지분 매각 등 투자 유치로 방향 틀어
대구FC는 市 추경안 편성 한고비 넘겨
구단들 지자체장 바뀔 때마다 불안감

1·2부 도·시민구단 年 운영비 120억원
대다수 기업 지원 꺼려 운영 어려워져
전문가 “스스로 경기력·이슈 만들어야”
‘조합원 주축’ 부천FC 새 모델로 부상
#1. ‘붉은색과 푸른색 사이 검은색은 무슨 죄? 우리의 색은 정치색 아닌 검은색!’ 지난 8월28일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 이곳에서 치러진 K리그1 성남FC와 수원FC의 맞대결에선 이색 플래카드가 휘날렸다. 성남FC 서포터즈인 ‘블랙리스트’는 당시 매각설에 휩싸인 홈팀을 응원하며 목청을 높였고, 성남FC의 상징색인 검은색을 앞세워 정치색 타파를 외쳤다. 플래카드 속 붉은색은 현직 시장이 속한 국민의힘을, 푸른색은 전임 시장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을 뜻한다.

#2.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줄면 당장 성적부터 곤두박질칩니다. 자생력을 키워야 하는데, 국내 프로축구 환경에선 어려운 일이죠. 자체 수익으로는 팀 운영이 불가능해 도·시민구단은 지자체장이 바뀌는 4년마다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경기도와 소속 지자체에서 매년 수십억원을 지원받는 한 시민구단 관계자는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하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 9월 16일 압수수색이 진행중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성남FC 구단 사무실 모습. 뉴시스

◆‘성남FC 후원금 의혹’이 진앙… ‘정치 바람’에 좌불안석

민선 8기 도·시민구단들이 ‘정치 바람’을 타고 있다. 프로축구 39년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몰고 온 발화점은 정치권이 터뜨리고 사정 당국이 키운 ‘성남FC 후원금 의혹’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던 구단들의 운영난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K리그 통산 7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을 차지한 명문 클럽 성남FC의 몰락은 상징적 사건이다. 33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으나 기사회생했다. 성남시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매각이나 연고지 이전을 검토하다가 홈팬의 반발에 맞닥뜨리며 지분 매각 등 투자 유치로 방향을 틀었다. 고비를 넘겼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바람 잘 날 없던 성남FC는 4년 만에 다시 2부리그 강등을 당했고, 일정 기간 투자 유치에도 경영권이나 지분 인수에 나서는 기업이 없으면 연고지 이전이나 매각, 해체 후 재창단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성남FC의 비극은 역설적으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성장이 시발점이 됐다. 이 대표가 과거 성남시장 시절 벌인 기업 후원금 유치에 대가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리 구단’이란 멍에가 지워졌다. 현 구단주인 신상진 성남시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에 매각하거나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연간 100억원 넘는 혈세가 구단 예산으로 충당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입지가 불안하기는 대구FC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부정적 시선 탓이다. 홍 시장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시민구단은 재정이 열악해 전부 기업구단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경남도지사 시절 구단주였던 경남FC가 2부리그로 강등되자 구단 해체를 거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그는 연간 130억원 넘는 예산 마련을 놓고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이 같은 우려는 대구시가 민선 8기 첫 추경안에 대구FC 운영비 23억원을 편성하며 한고비를 넘겼다.

구단주인 지자체장이 너무 우호적이어도 구단들은 역풍을 만날까 좌불안석이다. 2부리그인 K리그2에서 뛰는 FC안양은 구단주인 최대호 안양시장의 지원사격으로 1부리그 승격을 엿보는 등 순풍을 타고 있다. 올해 3선에 성공한 최 시장은 2010년 FC안양 창단의 주역이다. 김포FC도 올해부터 K리그2에 합류했다. 2013년 출범해 지난해 세미프로인 K리그3를 졸업했는데, 김병수 김포시장이 숨은 공로자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충북 청주시를 연고로 둔 청주FC와 충남 천안시를 연고로 하는 천안FC도 내년부터 K리그2 참가를 승인받아 프로구단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한 축구 관계자는 “지자체장이 팀 운영에 깊이 관여하거나 공적으로 삼을 경우, 바뀐 지자체장이나 반대 정치 세력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축구단은 거시적 관점에서 팬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26일 경기도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안양FC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경기, 수원 명준재가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뉴스1

◆ 생존 위한 혈투… “프로 정신 갖고 경기력·이슈 만들어야”

정문현 충남대 교수(스포츠과학)는 “국내 지자체구단은 정치적 배경에서 태어나 선거 결과에 따라 존폐 위기에 처하며 반자본주의 논리에 빠진 경우가 많다. 예산이 시·도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승리 수당도 챙겨주지 못할 정도”라며 “팀이 많다 보니 기업들이 떠안기도 벅찬 만큼 생존을 위해 프로 정신을 갖고 경기력이나 이슈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 시즌 K리그1에선 12개 팀이 뛰고 있다. 이 중 인천유나이티드와 강원FC, 수원FC, 대구FC, 성남FC의 5개 팀(41.7%)이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시민구단이다. 2부인 K리그2에선 전체 11개 팀 가운데 광주FC와 FC안양, 부천FC, 경남FC, 충남아산FC, 김포FC, 안산그리너스의 7개 팀(63.6%)이 도·시민 세금을 토대로 꾸려진다.

이른바 프로팀으로 불리는 1, 2부 구단 가운데 기업구단엔 연간 평균 200억원 넘는 운영비가 필요하다. 도·시민구단의 경우 절반 수준인 120억원 안팎이다. 세미프로인 K리그3(16개 팀)와 K리그4(16개 팀)는 이보다 훨씬 적어 각각 20억원 안팎과 10억원 미만이다. 대다수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팀들이다.

사정이 악화하면서 구단 운영을 포기하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경기 고양시는 올해 프로구단을 창단해 내년부터 K리그에 참여하려 했으나 불발됐다. 지원서를 낸 2곳의 기업 모두 시의 행정·재정적 뒷받침 등 전폭적 지원을 원해 틀어졌다. K리그4에서 활약하던 인천 남동구민축구단은 재정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올해 해체됐다.

현재 대다수 기업은 도·시민구단과 손잡는 걸 꺼린다. 구단 운영도 덩달아 어려워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지난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감에서 확인됐다. K리그 1, 2의 도·시민구단 12개 가운데 절반인 6개가 경기도에 둥지를 텄고, 매년 5억원씩 도비를 지원받는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부천FC의 경우 지난해 6억8000만원에서 올해 1억5000만원으로, FC안양은 2020년 64억원에서 올해 5억원으로 각각 광고·후원액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본지가 이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도내 4개 구단의 연도별 후원액과 예산 현황에 따르면 FC안양의 경우 시 출연금은 2018년 40억원대에서 올해 50억원대로 늘었다. 프런트 임금과 운영비 등이 포함된 판관비 역시 지난해 9억4200만원에서 올해 12억1100만원으로 증가 추세다. 반면 후원금은 2018년 7억9100만원, 2020년 64억4000만원, 올해 5억원으로 변동이 심했다.

지난 23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2 38라운드 최종전 울산현대와 제주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제주 서진수가 동점골을 넣고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뉴스1

다만, 성남FC와 규모가 비슷한 수원FC는 기존 1억3000만∼1억9400만원이던 광고수입이 2021년 6억2700만원, 올해 10억4600만원으로 이례적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1부리그 승격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팀의 주요 후원사는 성남FC와 마찬가지로 건설사·개발사 등 지역 기업과 병원, 농협 등이었다. 안산그리너스의 경우 농협안산시지부가 매년 2억원 안팎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현대미포조선도 2년간 11억원씩 거액을 내놓았으나 최근 지원이 끊겼다. 반면 부천FC는 사회적협동조합의 3000여명 조합원이 주축이다. 정부로부터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돼 기업 기부금을 받고, 조합원이 낸 1억5000만원 안팎의 조합비를 운영에 보탠다. 이는 시민구단의 새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원·성남·안양·안산=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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