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새 유엔해양법 적용 뒤
北, “NLL 일방 설정” 주장 도발
영유권 아닌 전시상 한시 경계선
“韓, NLL 이남 점유… 합의 필요”
북한군 총참모부는 지난 24일 서해 백령도 서북방 해역에 방사포 10발을 발사한 이유로 “(남측) 호위함의 해상군사분계선 침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군이 그날 새벽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북한 상선에 경고 통신과 사격을 한 것을 문제 삼았다. 남측이 ‘해상분계선’을 넘었다는 북한의 주장은 NLL이 유엔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그어진 경계선이라는 북한의 그간 입장에 근거한다. 이는 사실일까.

◆해상 경계선 언급 없는 정전협정…北, NLL 인정한 적 전혀 없나
유엔사는 6·25전쟁 정전 직후인 1953년 8월 NLL을 설정했다. NLL은 1953년 8월 유엔사 사령관이 한반도 해역에 일방적으로 설정한 무효 경계선이라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정전협정에는 영토에 관한 언급은 있지만 해상 경계선에 대한 언급은 없다. 결과적으로 NLL은 영유권 개념의 경계선이 아니라, 전시의 한시적 경계선이다. 하지만 정전 이후 NLL 이남은 남한이 실효적으로 관리해왔다.
북한은 1970년대 이전까지 NLL을 문제 삼진 않았다. 하지만 1994년 영해를 기존의 3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한 새로운 유엔해양법 채택 이후 북한이 서해 지역에서 기선 12해리 영해를 주장하면서 NLL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됐다. 1999년, 2002년, 2009년 세 차례의 서해 교전은 모두 NLL에 대한 남북 합의 부재로 발생했다.

국제법학계 일부에선 NLL이 사실상의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돼온 국제관습법상의 경계선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북한은 1973년부터 의도적 NLL 침범으로 반발 의사를 표시해왔으므로 국제관습법으로 NLL을 인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북한이 처음부터 NLL에 반발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1970년대까지 NLL을 문제 삼진 않았다. 하지만 1994년 영해를 기존의 3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한 새로운 유엔해양법 채택 이후 북한이 서해 지역에서 기선 12해리 영해를 주장하면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 갈등이 시작됐다.
1970년대 이전 북한이 NLL을 인정한 근거도 발견된다. ‘서해북방한계선(NLL)의 법적성격에 관한 연구’(김호춘)에 따르면 1959년 발간된 북한의 조선중앙연감에서 서해북방한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표기했다. 또 1963년 5월 연평도 서방으로 침투한 간첩선 사건 발생시 북한은 서해북방한계선 월선(越線)을 부인한 바 있다. 북한이 NLL을 부인한 1970년대 이후에도 1984년 북한의 수해물자를 백령도 및 연평도 서해북방한계선상에서 상봉 및 호송한 적이 있고, 1998년 1월 한국비행정보구역(KADIZ)을 육상군사분계선과 서해북방한계선 기준으로 조정 시 북한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NLL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평화합의 우선돼야”
NLL의 법적 성격은 ‘전쟁 수역’상 경계선으로, 전시의 경계선으로서 일시적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북한이 인식하듯 무효 여부를 확정적으로 가릴 문제는 아니며, 한국이 실질적으로 NLL 이남을 점유해왔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고, 향후 남북의 평화적 합의로 해결할 문제라는 조언이 나온다. 그간 NLL 문제가 지나치게 정쟁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27일 “향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 해결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NLL의 법적 문제와 평화적 해법’에서 우리 측 동·서해 NLL과 북한의 군사경계수역을 함께 폐기하는 일괄타협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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