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유학 후 2000년 귀국한 홍순명
회화·설치 등 실험적인 작업 펼쳐
캔버스 정면 아닌 옆면서 그림 시작
부분으로 전체 이루는 시각혁명 완성
재난 표현 ‘풍경…’ 캔버스 120개 조합
세월호 주제 ‘사소한 기념비’ 3년 작업
304개 오브제 랩 감싸 애도·위로 표현
이분법적 사고 경계… 다양성 존중
#너와 나의 가치와 연결망
얼마 전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세상을 떠났다. 마침 그가 1990년대에 작성한 글을 다시 읽던 참이라 마음이 바닥으로 금세 가라앉았다. 곧이어 그가 지난 80여년간 논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부르고뉴 지방의 유명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부모님 아래서 자란 그는 과학자로서 오랜 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냈다.
그러던 가운데 팩트(fact), 즉 진실로 여겨지는 과학이 사실 인간에 의해 생겨난 하나의 산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생각은 기존의 고정 관념과 이분법적 사고를 무너뜨리며 주체와 객체, 중심과 주변을 해체했다. 오히려 그것을 연결하는 망(網)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그의 행보는 최근 주목받는 객체 지향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라투르의 지난 논의를 살피니 이처럼 주객을 해체하는 작가들이 생각났다.
철학적으로 멀리 가지 않아도 존재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들. 부분과 전체를 볼 줄 알며 그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 가운데는 홍순명(1959∼)도 있었다.
홍순명은 회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작업을 펼치는 작가다. 그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부산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강패’ ‘황색벌판’ 등 미술 그룹 동인으로 전시를 시작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1985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했다.
2000년 무렵 귀국하여 한국에 대안공간이 생성하는 분위기 속, 쌈지아트스페이스 1기 입주작가로 국내에서 작업을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 이후 대구미술관, 사비나미술관,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아마도예술공간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국제비엔날레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 및 행사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호암미술관, 이시레물리노 시립미술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산타페 아트 인스티튜트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제1회 전혁림미술상, 제17회 이인성미술상 등 저명한 미술상을 받았다.

#홍순명의 ‘사이드 스케이프’
홍순명이 서울, 부산 그리고 파리에 오가며 관심을 두게 된 주제는 ‘부분과 전체’였다. 그가 유학 생활을 한 1980∼199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전에 없던 변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글로벌과 디아스포라, 중심과 주변에 관한 논의가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졌다. 예술은 이러한 논의를 선두적으로 이끌었으며 타국에서 생활하는 작가에게 이는 더 크게 다가왔다. 독일의 과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를 읽은 것은 관련 내용을 작업에 끌어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부분 안에 전체가 있고 전체 안에 부분이 있으며 그 둘은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홍순명은 캔버스 정면이 아닌 옆면에 그림을 그리는 시도를 시작했다. 캔버스를 지탱하던 옆면이 작업의 중심, 작업의 중심이었던 정면이 보조 역할을 맡게 되었다. 무언가를 그리기에 옆면의 폭이 좁은 문제는 책장에 책을 꽂듯이 여러 캔버스를 한곳에 합치는 것으로 해결했다.
중심과 주변, 즉 센터와 사이드를 와해하는 작업은 ‘사이드 스케이프(sidescape)’ 연작으로 이어졌다. ‘사이드 스케이프’는 작은 캔버스 수십, 수백개에 그린 그림을 합쳐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작품이다. 부분으로 전체를 이루며 다양한 가치 존중과 통합적 시각 혁명을 이루어 낸다.
이분법적 대립 논리, 양자택일적 사고, 위계와 차별의 경계를 해체한다. 작가는 최근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홍순명―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재난, 가족’에서 이 연작의 근래 전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Side(비켜난 풍경)라는 단어의 의미를 발전시키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성, 인식, 체력, 습관, 합리적 사고 등을 기준으로 인간의 몸과 정신이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모든 것들을 side에 포함시켰다.”

‘풍경―아이러니’(2022)는 사이드 스케이프적 시선으로 재난을 포착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10m를 넘어서는 거대한 그림이 하나 놓여 있다. 화면 전반은 뭉실뭉실한 모양의 하얀 형태로 가득 채웠다. 왼쪽은 햇빛을 받은 듯 하얗게 빛나고 오른쪽은 그림자가 지듯 어둡다. 그 모습을 살펴보려 작품 가까이 다가가 살피면 멀리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한다. 거대한 화면은 셀 수 없이 많은 캔버스가 모여 완성한 하나의 합이다.
그리고 뭉게구름처럼 보이던 형상은 우측 하단에 작게 드러난 불꽃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다. 평화로워 보이던 장면은 불꽃을 발견하는 순간 재난 풍경으로 삽시간에 돌변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국내에서 가뭄으로 인해 벌어진 대형 산불을 다룬 작업이다. 재난의 장면을 부분 포착으로 아름답게 느낀 경험은 관람자에게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과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60, 50㎝ 크기의 캔버스 120여개로 분할하고 재조합해 완성한 이미지는 회화성 그 자체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든다. 대상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이야기를 제거해 색, 붓질의 흔적 등 순수한 회화적 요소에 집중시킨다.
#그리고 ‘사소한 기념비’
홍순명이 ‘부분과 전체’를 통해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려는 태도는 다른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다양한 형태로 또는 주제로 표출되는데 이는 어떤 사건과 관계할 때도 있다. 사건의 피해자는 다수보다는 소수이며, 소수는 약자이자 주변인일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를 두고 20년 가까이 주변을 보는 작업을 하다 보니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 자연스레 바뀌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그간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실천해 나가는 방식에 변화가 일었다고 고백한다. 인터넷에서 수집한 보도 사진 기반의 작업을 펼치다 사건의 현장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된 이유다.

‘사소한 기념비’(2015∼2017)는 사건 현장 한가운데서 비롯한 작업이다. 여기에는 은빛 오브제 조각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한 조각들은 흥미를 자아내며 일정한 간격으로 벌어졌다 모여 전체를 이룬다. 백색 도자처럼 빛나는 형태를 자세히 보면 사실 바다에서 수집한 오브제들을 투명한 랩으로 여러 차례 감싼 결과물들이다. 바다에서 쓰레기로 부유하던 플라스틱, 어구 등은 작가의 손을 거쳐 작품의 빛나는 일부로 다시 태어난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건을 주제로 작가가 팽목항과 주변 해안가를 방문하며 3년여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거기서 수집한 304개의 오브제에 죽은 자에게 수의를 입히듯 투명한 랩을 입혀주었다. 온기를 유지하도록 해준 작업은 애도, 위로, 기억하기를 보는 이에게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을 볼 때 중요한 것은 작품이 사건을 다루지만, 여전히 예술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건을 자주 다루는 동시대 미술에서 사회 운동과 그것을 구별하는 것은 은유다. 작가는 사건의 주변을 돌면서 그 사건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미디어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주제들을 불러낸다. 예를 들어 ‘사소한 기념비’ 속 작은 기념비들은 모든 존재가 가진 기념비적 성격, 가치를 다시 보게 하는 계기도 된다. “그 사건에 대해서 정확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보다는 대략적인 방향성을 가지면서 그 안에서, 그 범위 안에서 슬쩍 보였다가 또 사라지는 그래서 소위 어떤 사각지대에 머무르는 그런 작업이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라는 작가의 사비나미술관 전시에서의 메시지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라투르의 글을 읽고 홍순명의 작업을 보며 생각한다. 너와 나의 가치에 관해서. 너와 나의 사소한 기념비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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