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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편가르기에… 체코 독립절 행사 '반쪽'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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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26 17:30:00 수정 : 2022-10-26 17:15:31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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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독립 104주년 기념행사 프라하城에서 열려
제만 대통령, 마음에 안 드는 장관·의원 초청 제외
피알라 총리 "독립기념일, 대통령 개인 잔치 아냐"

임기만료가 얼마 안 남은 체코 대통령의 노골적인 편가르기 행보 탓에 이 나라 최대 경축일인 독립절 행사가 파행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체코는 흔히 의원내각제 국가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국민 직선으로 뽑는 대통령이 상당한 권한을 갖는 이원집정제 정부 형태다. 현 총리와 내각이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의 ‘몽니’가 국격마저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체코의 페트르 피알라 총리(왼쪽)와 밀로시 제만 대통령. 체코는 이원집정제 국가로 통상의 의원내각제 국가에 비해 대통령 권한이 제법 강하다 보니 총리와 대통령 간에 가끔 갈등이 발생한다. SNS 캡처

25일(현지시간) 체코 언론 ‘브르노 데일리’에 따르면 오는 28일은 체코 독립기념일로 현재 밀로시 제만 대통령의 관저로 쓰이는 프라하성(Prague Castle)에서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패전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며 오랫동안 그 지배를 받은 체코슬로바키아가 1918년 10월28일 독립국이 된 것을 기리는 날이다. 이후 2차대전 때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고 냉전 시절엔 소련(현 러시아)의 위성국으로 전락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93년 지금의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공화국으로 분리됐다.

 

경사스러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내각의 장관, 그리고 국회의원들 상당수가 “기념식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밝힌 사유 가운데 “행사를 주관하는 대통령실의 초청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많다. 어떤 이는 “초청을 받았지만 헌법, 그리고 헌법기관의 공직자를 무시하는 대통령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안 가겠다”는 입장이다. 아예 그날에 맞춰 해외출장 일정을 잡아 일부러 나라를 비우는 이도 있다.

 

내각을 대표하는 페트르 피알라 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나도 행사를 무시하라는 권유를 주변에서 많이 받았고, 또 불괘감이 들지만 참석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독립기념일 행사는 제만 대통령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체코 공화국 수립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전통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수많은 나라의 대사 등 외교관과 우리 군인들, 그리고 훈장 수훈자가 행사에 참석할 텐데 내각을 대표하는 총리로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총리가 이런 발언을 할 정도라면 ‘도대체 제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2013년 5년 임기의 체코 대통령에 당선돼 연임에 성공한 제만 대통령은 오는 2023년 3월까지 재임할 예정이다. 임기만료를 5개월가량 앞둔 올해 78세의 제만 대통령은 취임 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내각과 충돌을 빚었다. 체코는 총리가 장관 후보자를 정해 임명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는 구조다. 그런데 제만 대통령은 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을 잡아 승인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이가 그 자리에 앉게 만들곤 했다. 이번 독립기념일 행사에 초청을 받지 못한 장관과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제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지난해 11월 페트르 피알라 신임 체코 총리(왼쪽)가 밀로시 제만 대통령 앞에서 취임선서를 한 뒤 이동하는 모습. 고령의 제만 대통령은 당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격리 상태였으며, 이에 사진에서 보듯 투명한 소재의 합성수지로 된 상자 안에 갇힌 채 피알라 총리의 선서를 지켜봤다. 프라하=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피알라 총리가 얀 리파브스키 외교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제청했을 때의 일이다. 내심 피알라 총리가 못마땅했던 제만 대통령은 리파브스키 후보자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너무 못했다는 등 이유를 들어 승인을 거부했다. 그러자 피알라 총리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하겠다”며 맞섰고, 결국 제만 대통령이 한발 물러나 임명에 동의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체코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한 1993년 이래 제만 대통령 말고는 역대 어느 대통령도 각료 임명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리파브스키 외교장관은 당연히 이번 기념식 초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행스럽게도 나는 행사에 참석할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웃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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