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서 2015년 정계 입문
재무장관 때 코로나 지원책
팬데믹 시대 국민 인기 높여
10월 말 예산안 발표 등 예정
국제사회 리더십 발휘 촉각
영국 역사상 최초의 비(非)백인이자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 총리가 탄생했다.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리시 수낵 전 재무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 총리 퇴진에 따라 실시되는 집권 보수당 대표 선거 입후보에 필요한 당 소속 하원의원 100명 이상의 지지를 단독 확보해 차기 총리로 확정됐다. 의원 내각제인 영국에서는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수낵 차기 총리는 찰스 3세 국왕에게서 임명된 뒤 공식 총리 업무에 들어간다.

수낵 차기 총리는 후보등록 마감 시한인 이날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10시) 당 소속 하원의원(357명) 중 과반(179명)을 넘는 지지를 확보해 단독 입후보했다. 영국 BBC 방송은 수낵 차기 총리가 후보등록 마감 30분전 의원 193명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경쟁자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는 100명의 이상의 지지를 얻지못해 입후보에 실패해 당원 투표 없이 수낵의 승리가 확정됐다. 보수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동료 하원의원 100명 이상의 지지가 필요하다.
수낵 차기 총리는 전날 (23일) “영국의 경제를 바로잡고, 당을 통합하고, 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출마를 선언했다. 수낵 차기 총리는 전날 심야 유력 경쟁자이었던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승리를 사실상 확정했다. 존슨 전 총리는 불출마 성명에서 “출마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정당이 통합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정치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보수당 당대표 선거 결선에서 최종 2위를 차지한 수낵 차기 총리는 트러스 총리가 역대 최단기 총리라는 오명을 쓰고 물러나면서 거꾸로 최단기 재도전 성공이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수낵 차기 총리는 동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다. 한반도 출신이 일본 총리에 오른 것에 비유할 수 있다. 1980년 출생의 42세로 1812년 로버트 젠킨슨(취임 당시 42세) 이후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트러스 총리가 지난달 취임 직후 발표한 감세안을 수습하지 못하자 일찌감치 영국 매체들은 수낵 차기 총리의 부활을 전망했다. 더타임스는 “수낵이 차기 총리가 되면, 현대 정치사에 길이 남을 정치적 부활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트러스 총리가 촉발한 감세안 후폭풍을 수습 중인 제러미 헌트 재무부 장관은 존슨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직후 수낵 차기 총리 지지를 공개 표명했다. 헌트 장관은 “수낵은 우리의 다음 지도자로서 안정과 자신감을 줄 것”이라며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일자리, 주택담보대출, 공공 서비스 문제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헌트 장관은 지난달 당대표 선거 때도 수낵 차기 총리를 지지했다.

◆경제·안보 등 과제 산적
수낵 차기 총리는 대외정책과 관련해 그동안 △우크라이나 지지 △영국 내 공자학원 30곳 폐쇄 △중국 산업스파이 척결 등을 주장했다. 수낵 차기 총리는 트러스 총리 시절 초래된 극심한 혼란상을 수습하면서 인플레이션 억제와 경기침체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영국은 경기침체냐 아니냐 기로에 서 있는 상태이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어두운 수치들이 나오고 있다. 당장 31일에 예산안 발표 여부부터 결정돼야 한다. 영국 정부는 이때 재정 전망까지 내놓을 예정이었다. 예산안엔 영국인들이 증세와 지출 삭감의 고통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할지, 부채는 얼마나 늘어날지가 나오게 된다.
리더십을 발휘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후 5번째 총리가 등장할 정도로 불안정한 국내 정치 상황을 안정시키고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G7(주요 7개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심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존재감 부각이 중요하다.
야당의 조기 총선 실시 압박도 넘겨야 한다. 제1야당 노동당은 벌써 규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앤절라 레이너 노동당 부대표는 “보수당은 수낵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지에 대해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은 채 국가 운영의 열쇠를 수낵에게 넘기려 하고 있다”고 했다.

브렉시트 이후 스코틀랜드 독립 움직임도 국정운영의 주요 변수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내년 10월 독립 재투표를 추진 중이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영국 정치에 큰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최초 MZ세대 총리
수낵 차기 총리는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았다는 이유로 ‘백인보다 더 하얗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막대한 부’는 아킬레스건으로도 꼽힌다. 재산이 총 7억3000만파운드(약 1조2000억원)로 알려져 있다. 이 중 6억9000만파운드(1조1200억원)는 아내인 악샤타 무르티가 보유한 인도 정보기술(IT) 대기업 인포시스 지분이다. 무르티는 인포시스 창업자인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이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몸담았던 수낵 차기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당선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8년 1월 테리사 메이 내각에서 지방정부 차관에 올랐다. 당시 함께 일한 당 관계자는 수낵을 워커홀릭으로 묘사했다.

수낵 차기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암흑시대에 오히려 인기를 높였다. 2020년 2월 존슨 내각에서 재무부 장관에 올라 코로나19 지원책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투입하는 등의 대규모 재정지원 정책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매체들은 수낵 차기 총리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매력적인 외모를 꼽는다. ‘매력적인 리시(Dishy Rishi)’가 별칭일 정도로 항상 잘 차려입은 모습이 영국 정계에서 돋보이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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