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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카메라 불법 촬영 판치는데… 규제법은 국회서 ‘낮잠’

입력 : 2022-10-20 18:47:42 수정 : 2022-10-20 21: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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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 내장·적외선 탐지 기능
신기술 탑재 제품들 버젓이 팔아

불법 촬영 범행 年 5000건 넘어
“카메라 판매 규제” 여론 높지만
“혁신 저해” 관련법 번번이 무산
與, ‘판매·소지자 등록’ 법안 발의

“제일 최신 제품은 올해 나온 건데, 와이파이가 내장돼 실시간으로 영상을 볼 수가 있어요.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 없어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의 한 전자기기 매장에서 만난 가게 주인은 초소형 카메라를 찾는 취재진에게 신제품을 추천했다. 과거엔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이 카메라에 내장된 메모리카드에 저장돼 컴퓨터 등 다른 전자기기를 이용해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와이파이를 통해 촬영물을 실시간 전자기기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어두운 곳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적외선 탐지 기능을 갖춘 카메라도 있고, 영상 촬영과 함께 음성 녹음이 가능한 카메라도 판매 중이었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초소형 카메라는 통상적인 카메라의 모습이 아니었다. 라이터, 선글라스, 화재경보기, 보조배터리 등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용품의 모습이었다. 손톱만한 단추에 카메라를 부착한 단추형 제품도 있었다. 지름 2㎜의 작은 렌즈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카메라로 변형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위장형 카메라’가 불법촬영에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39차례 불법촬영을 저지른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한 골프리조트 기업 회장 아들은 탁상시계와 자동차 키 모양의 카메라를 범행에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아주대학교 의과대 학생은 교내 탈의실에 스마트폰 모양의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촬영을 하다가 적발됐다.

하지만 현재 위장형 카메라의 소지 및 취급 관련 규제는 전무하고, 그 종류나 수량 등 현황도 파악되지 않는 실정이다. 온·오프라인에서 누구나 손쉽게 위장형 카메라를 구할 수 있지만, 어떤 용도로 쓸지 제한이나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5000건 이상의 불법촬영 범죄가 발생하고 불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위장형 카메라의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은 최근 위장형 카메라의 범죄 악용을 예방하기 위한 ‘위장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위장형 카메라에 대해 외관상 일상생활용품의 형태를 하고 있어 카메라라는 것을 인식하기 어려운 카메라로 정의했다. 또 위장형 카메라를 제조·수입·수출·판매하거나 소지하고자 하는 사람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에 등록하도록 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장형 카메라에 대한 문제는 수년째 제기돼 왔다. 2015년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몰카’(불법촬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카메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변형된 카메라에 대해 생산·판매·소지를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해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윤 의원의 법안과 유사한 법안이 매년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법안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목소리는 거세다. 2018년 위장형 카메라를, 2021년에는 초소형 카메라를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2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법안 통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국회에서는 카메라 기술이 자동차·의료·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어, 과도한 규제가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교통 신호등이 일제히 빨간불을 가리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회가 기술 발전을 이유로 규제에 손 놓고 있는 탓에 시민들은 자구책을 찾아나서는 상황이다. 직장인 A씨는 “불법촬영 범죄 뉴스를 많이 접하다 보니 집 밖에서 화장실을 갈 때면 늘 불안하다”며 “불법촬영 카메라가 이용하는 와이파이는 네트워크 이름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설정돼 있다는 말을 듣고 화장실에서 와이파이를 켜서 확인해보기도 한다”며 “‘몰카 탐지기’ 구매를 고려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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