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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치료 기피에… 1020 ‘우울증 극단 선택’ 해마다 증가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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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18 06:00:00 수정 : 2022-10-18 06: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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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높은 정신과 문턱

10대, 부모·학업 ·교우 등서 스트레스
경제적 기반 약한 20대·60대도 심각
극단 선택 사유 절반은 정신적 문제
2021년 총 5258명… 1년 새 7.2% 늘어

코로나도 정신 건강에 ‘악영향’ 미쳐
적절한 시기 치료 받으면 예방 가능
“주요 인사들 앞장서 인식개선 노력
편안하게 병원 찾는 분위기 조성을”

박지은 교수 정신과 빅데이터 분석

20·30대 ‘제도 불이익’ 불안감 높아
특정인 진료 이력 타인 열람 불가능
“개인 진료정보 보호 적극 홍보 필요”

우울증 등을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이 지난해 5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최근 들어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하다. 진료의 문턱을 낮추는 한편 ‘정신 질환도 질병의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연령대별 자살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은 총 1만3205명으로 집계됐다. 전년(1만2776명)에 비해 3.4% 늘어난 수치다.

구체적 사유를 보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를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이 같은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은 2020년 4905명에서 지난해 5258명으로 증가했다. 증가율로 따지면 7.2%로, 전체 극단적 선택 증가율의 2배를 웃도는 수치다. 2017년 3939명, 2018년 4171명, 2019년 4638명으로 최근 5년으로 범위를 확장해도 증가세가 뚜렷하다.

반갑지 않은 이 상승 곡선은 우리 사회의 정신 건강에 적신호 경고음이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경찰청은 극단적 선택 사유를 정신적·정신과적 문제와 함께 △가정 문제 △경제생활 문제 △육체적 질병 문제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 △남녀 문제 △사별 문제 △학대 또는 폭력 문제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최근 5년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인 그룹은 정신적 문제가 유일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청소년 세대에서 정신적 문제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10∼20세의 경우 2019년 183명에서 2020년 231명, 지난해 256명으로 늘어났다. 연간 증가율로는 각각 26.2%, 10.8%에 달한다.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은 “초등학생은 부모와의 갈등, 중·고등학생은 학업과 진로, 교우 관계 등으로 인해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면서 “부모에게 호소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들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유 단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자녀가 함께 고통을 받거나, 비대면 학습 환경으로 인해 친구와 교류하지 못해 우울증이 심해지는 케이스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20대와 60대 이상에서도 정신적 문제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많았다. 21∼30세는 2019년 599명에서 2020년 773명, 지난해 888명으로 늘며 각각 29.1%, 14.9%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61세 이상에서도 같은 기간 1469명, 1504명, 1626명으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다른 연령대에서는 같은 기간 정신적 문제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소폭 증가하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31∼40세의 경우 2019년 720명에서 2020년 713명으로 오히려 감소하다가 지난해 737명으로 약간 늘었다. 41∼50세 역시 779명에서 815명으로 늘었다가 지난해는 799명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51∼60세도 885명, 868명, 962명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정신적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정신과 진료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적절한 시기에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면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비극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함께 최근 7년간 자살 사망자 801명 등을 대상으로 심리부검을 진행한 결과, 사망자 중 710명(88.6%)은 정신과 질환을 진단받았거나 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우울장애가 82.1%로 가장 많았고 중독장애(32.8%), 불안장애(22.4%) 등이었다. 자살 사망 이전 3개월 이내에 도움을 받기 위해 기관을 방문했던 사람은 394명(49.2%)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지난해 복지부가 발표한 정신건강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치료 격차’가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1년간 정신 건강 문제로 의사 등 전문가에게 상담 또는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2%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 43.1%, 캐나다 46.5%, 호주 34.9% 등 다른 주요 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신 장애가 있는 것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 중에서 평생 동안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 비율 또한 12.1%에 불과했다.

석정호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높은 자살률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다”고 단언했다. 석 교수는 “극단적 선택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정신 질환이 우울증인데, 우울증은 사실 치료가 잘될 수 있는 편에 속한다”며 “병원에 오기를 망설이면서 점집을 가거나 검증되지 않은 상담 서비스 등을 이용하다가 오히려 우울증이 악화되거나 자살 위험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라는 상황이 대부분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우울증과 불안증, 불면증 등을 호소하며 병원 오는 분이 많이 늘었다”며 “정신과 방문 자체를 숨겨야 되는 치부처럼 생각하고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사회 지도층이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 해소에 먼저 앞장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는 우리나라만큼 정신과에 접근하기가 좋은 환경인 나라가 별로 없다”며 “존 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일가와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비가 정신 건강 홍보대사로 활동하듯, 우리도 주요 인사들이 나서서 편견 해소를 도와 누구나 편안하게 정신과를 찾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 진료기록 철저히 보호… 진학·취업 차별 없어”

 

직장인 정기훈(37·가명)씨는 두 달 가까이 우울감에 시달리다가 고민 끝에 지난 5월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정씨는 “진료를 망설인 것은 신상을 밝히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라며 “의사가 과연 내가 겪는 고통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고 말했다. 첫 방문 이후 정씨는 격주로 병원에 가서 상담 중심의 진료를 받고 있다. 정씨는 “누군가에게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터놓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는 이유로 ‘제도적 불이익’을 꼽는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이 지난해 개최한 ‘시민사회 정신건강 증진과 편견 해소’ 심포지엄에서 박지은(사진)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온라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신과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람들이 쉽게 정신과에 가지 못하는 현상 이면에는 정보 부족으로 인한 오해뿐 아니라 차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에 따르면 정신과 진료 진입 장벽 관련 키워드 중 ‘제도적 불이익’이 전체의 34.0%로 가장 많았다. ‘사회적 인식’이 27.8%로 뒤를 이었고, ‘약 부작용’(18.6%) ‘치료 비용’(16.1%)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박 교수는 “연구 전에는 사회적 인식이 가장 중요한 장벽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보다 진료 기록 보호에 대한 문제와 차별로 인한 두려움으로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20∼30대에서는 ‘제도적 불이익’ 키워드가 60% 이상을 차지했다. 공무원 취업과 관련해서 국가 기관 간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의심과 불안이 상당히 높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 교수는 “보다 적극적으로 진료 정보가 보호되고 있음을 제대로 알리는 한편,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면 구체적인 설명이 명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견과 달리, 의료계에서는 취업 등 과정에서 특정인의 정신과 진료 이력을 본인 허락 없이 타인이 열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정신과를 포함해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 4325개 질병 코드는 ‘특수상병’으로 분류돼 본인의 신분증을 지참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직접 방문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진료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채용, 임용, 승진, 대학 진학 등의 이유로 특수상병 건강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공무원 취업 또한 단순히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정도로는 채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규정’ 제4조는 ▲업무 수행에 큰 지장이 있는 정신 계통의 질병 ▲마약중독과 그 밖의 약물의 만성 중독에 한해 불합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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