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유층 감세 반대… 판단은 英에 달려"
'킹달러'엔 "걱정하지 않아… 美 경제는 강해"
부유층의 세금을 낮춰 영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내겠다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구상이 새 내각 출범 후 40일도 안 돼 무너져 내린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그럴 줄 알았다’는 취지의 반응을 보여 눈길을 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러스 총리가 노린 ‘낙수효과’(Trickle Down)에 대해 오래 전부터 부정적 견해를 밝혀왔다.

낙수효과란 성장을 통해 부의 절대적 크기를 늘리면 누구나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뜻으로, 부유층의 소득 증대가 유발하는 소비와 투자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저소득층도 혜택을 본다는 이론이다.
‘민생 현장 탐방’을 내걸고 미 서부지역을 순회 중인 바이든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오리건주(州) 포틀랜드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 안에서 취재진과 짧은 일문일답을 가졌다. 한 기자가 미국 국내 현안에서 벗어나 “최근 영국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트러스 총리의 좌절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트러스 총리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감세안을 발표한 직후 영국 파운드화(貨) 가치가 큰 폭으로 추락하는 등 경제위기 발생이 우려되자 이를 거둬들인 것을 의미한다. 지난 9월6일 취임한 트러스 총리는 핵심 측근인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내각 출범 후 40일도 안 돼 경질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반대파인 제레미 헌트를 새 재무장관으로 맞아들인 트러스 내각을 두고 영국 정가와 언론은 벌써부터 ‘조기 붕괴’를 예상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뜸 “그건 충분히 예측가능한(predictable) 일”이라고 답했다. 트러스 총리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실수’(mistake)라는 표현을 써 가며 “(트러스 총리의 정책이) 실수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러스 총리, 그리고 영국 정부 입장에선 상당히 불쾌하면서도 수치스럽게 여길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월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낙수효과 경제론에 질렸다”며 “낙수효과는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부유층의 세금을 감면하면 그것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저소득층까지 같이 혜택을 본다는 이론은 틀렸다고 단언한 셈이다. 마침 해당 SNS 글이 게시된 시점은 트러스 총리가 뉴욕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과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갖기 하루 전이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영국 정부의 감세정책에 우려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행여 영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나 트러스 총리를 겨냥한 조롱처럼 비칠까봐 우려스러웠는지 “비록 나는 그런 정책에 동의하지 않지만,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는 결정은 결국 영국 정부 판단에 달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의 이른바 ‘킹달러’, 즉 지나친 달러화 강세 현상에 관해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며 “우리 경제는 내부적으로는 엄청나게 강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달러 가치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부담과 고통은 어디까지나 미국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얘기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미국의 상황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양호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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