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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인문정원] 나는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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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14 22:48:06 수정 : 2022-10-14 22: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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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자아와 존재 감싸는 거푸집
장기·뇌… 모두가 ‘삶을 빚는 장인'

아버지는 뼈를 주고, 어머니는 피를 주었다. 덕분에 나는 몸으로 사랑하고 몸을 써서 일을 한다. 몸이 없다면 사랑도 일도 불가능할 테다. 몸은 자아의 ‘벙커’이자 존재를 감싸는 ‘거푸집’이다. 살갗 아래 이것은 하나의 기적, 가장 경이로운 미스터리일 것이다. 타인은 나를 항상 신체로 발견한다. 채혈을 하려고 주삿바늘이 몸을 찌를 때 나는 진저리를 친다. 이 끔찍함은 내 몸이 이것을 공격으로 인식하는 탓이다. 반면 맛있는 걸 먹으면 만족감에 젖은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듯 나는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나는 전립선과 괄약근을 가졌다. 두 신체기관은 뇌나 심장에 견줘 덜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존재감이 미약해서 아프기 전에는 제가 있음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나는 전립선과 괄약근이 그 나름으로 내 존재를 떠받친다고 생각한다. 건강검진을 받은 뒤 내 전립선이 커진 걸 알았다. 전립선이 비대해지면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주치의는 비뇨기과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하지만 나는 그 검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장석주 시인

피가 흐르는 혈관의 길이는 총 11만2000㎞,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도는 길이다. 피는 신체 말단의 세포들에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하고, 노폐물과 찌꺼기는 수거한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피가 쉬지 않고 일하는 덕분이다. 이 경외의 물질은 붉은 액체로 된 정신이다. 피는 내 기질과 존재론적 특성을 품는다. 따라서 피는 내 존재 증명의 수단이다. 한 철학자는 ‘피로 써라!’라고 명령한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지느러미를 살랑이며 움직이는 걸 관찰하며 나는 자주 놀란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물고기를 관찰하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눈은 수정체, 망막, 동공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을 시신경이 감싸고 있다. 눈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눈꺼풀 아래 눈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눈꺼풀은 늘 눈을 보호한다. 나는 눈으로 달빛 너머의 세상을 보고, 눈으로 본 것을 시로 쓴다.

위는 신체의 축소판이다. 나는 위를 통해 인생의 비통함과 비루함을 배웠다. 본 적은 없지만 내 위가 작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적게 먹어도 내 위는 금세 포화 상태에 이른다. 위는 근육의 크기는 주먹만 하지만 신축성이 뛰어나 잘 늘어난다. 네가 먹은 것을 말해봐. 네가 누구인지를 말해줄게. 위는 음식물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고 위액을 섞어 소화시킨다. 위는 휴식을 모르고 일하는 일꾼이고, 가장 겸허한 노동자다.

담낭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사조차도 “담낭은 쓸모가 없어요. 문제를 일으킨다면 당장 떼어내세요”라고 말한다. 더구나 담낭 제거 수술은 아주 간단하다. 나는 담낭을 없앨 계획이 없다. 쓸모없는 것은 쓸모없는 그것대로 그냥 두고 싶다. 담낭이 쓸모없게 된 것은 담낭의 문제가 아닐 테다. 아마도 농업혁명 이후 크게 바뀐 생활환경 탓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 일이 아니다.

나는 갑상샘 항진증이나 저하증을 앓는 이의 고통을 모른다. 내 아내는 갑상샘이 고장 난 탓에 가끔 식욕이 폭발해서 폭식을 한다. 그래도 체중은 준다. 열량을 과소비하고 신진대사가 빨라진 탓이다.

“반짝이는 존재의 둔덕, 쥐색 세포들의 의회, 꿈의 공장, 공 모양의 뼛속에 들어 있는 작은 폭군, 모든 것을 담당하는 뉴런들의 밀담, … 그 변덕스러운 쾌락의 극장.”(다이앤 애커먼, ‘마음의 연금술사’, 김승욱 옮김, 21세기북스, 17쪽) 이것은 무엇일까? 바로 뇌다. 이것은 “복잡한 화학공장”이자 “자그마한 번개들이 여기저기 번쩍이는 무정한 공간”(앞의 책, 18쪽)이다. 뇌에는 작게 쪼개진 자아들이 머문다. 뇌는 경험을 배열하고 직관과 기억과 은유를 길어내는 만능 천재다. 이것은 미래 계획을 세우고 여러 사안을 결정하며, 특정 취향으로 이끌고 삶을 빚는다. 뇌는 일상의 감시인이자 생물학적 필요에 부응하며 삶을 빚는 장인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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