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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의 상징 ‘전족’… 그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면의 기록

입력 : 2022-10-15 01:00:00 수정 : 2022-10-14 19:28:54
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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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폭력: 전족의 은밀한 역사/도러시 고/최수경 옮김/글항아리/3만원 

 

1999년 1월, 전족(纏足)용 신발을 생산하는 하얼빈 마지막 공장의 생산 라인이 멈췄다. 매년 300켤레 이상의 전족용 신발을 만들던 공장이었지만, 수요가 빠르게 감소하고 고객 대부분이 여든이 넘어가자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은 성대한 기념식을 열고, 전족용 신발을 박물관에 기증하며 마지막을 고했다.

12세기 무렵부터 중국에서 성행하던 전족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족의 시초와 전파 경로는 명확지 않다. 당나라 양귀비부터, 혹은 남당의 마지막 군주 이욱의 궁정 무희 요낭 이전부터 있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오지만, 문학적 상상일 뿐 문헌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그저 큰 발은 게으르고 천한 것의 상징이 됐고, 여성들은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발을, 딸의 발을 헝겊으로 꽁꽁 싸맸다. 매년 8월이면 ‘발 경연대회’가 열렸고, 발에 대한 품평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이어져 온 것이 1000년. 왕조도 몇 번이 바뀌는 세월에, 어떻게 전족은 긴 시간 유지됐을까. 그동안 지배적인 시각은 ‘여성에 대한 억압’이었다.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혹은 여성을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의미다.

신간 ‘문화와 폭력: 전족의 은밀한 역사’는 이런 시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자 도러시 고는 잔인함과 폭력, 대상화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지리적, 사회적 계층에 상관없이 전족이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전족 관습에 남성의 욕망이 투영됐다는 점 자체를 부정할 순 없지만, 여성들 또한 작은 발을 적극적으로 가꾸며 이를 하나의 패션으로 인식하거나 성공의 수단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책은 무조건적인 ‘반(反)전족’에 대한 반기도 든다. 1880∼1930년대 계몽 지식인, 민족주의자 등을 중심으로 커진 ‘반전족’ 목소리는 오히려 전족 여성을 일방적으로 대상화했다. 실제 전족을 한 여성의 목소리는 배제한 채 전족 관습의 저속함과 수치스러움만 강조한 것이다. ‘문화적 자부심’을 여전히 가진 채 딸의 전족을 풀지 못한 어머니, 전족 띠를 푼 후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걷는 여성까지, 전족 여성들은 초조함, 굴욕감, 수치심을 오롯이 가져가야 했다. 순식간에 바뀐 ‘사회 조류’에 여성은 또다시 그를 따라 발을 맞춰 나가야 한 셈이다.

저자는 전족 여성을 직접 만나 근대 반전족 운동 기간에 나이 많은 여성들이 느낀 굴욕감과 선택 동기, 갈등 등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책은 여성주의적 시각을 취하되, 지나치게 단순화된 도덕주의적 어조와 기존의 진보 사관, 페미니즘적 입장에도 맞선다.

각주 분량만 90쪽이 넘을 정도로 방대한 문헌을 탐색한 저자는 전족에 대해 “아름다우면서도 추하고, 자원한 것도 아니지만 강요된 것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전족을 통해 남성 대 여성,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저항한다”고도 말한다.

저자의 맺음말은 한 시각으로 치우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어떤 삶의 방식은 역사가 되었다.”


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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