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사태의 여파로 큰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정부가 최대 30조원 규모의 맞춤형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새출발기금’이 전국 76개소에 마련된 오프라인 현장 창구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지난 4일 출범했다.
당초 대출 만기 연장·원리금 상환 유예 연장 등의 정부 대책으로 신청이 부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지난 한주간 신청된 금액이 모두 1조원을 넘어서며 중소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더욱 크게 터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새출발기금은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금융, 포용 금융 정책으로 볼 수 있다. 비단 새출발기금 뿐 아니라 정부는 다양한 ESG 금융 정책을 예고한 바 있다. ESG와 관련된 금융 정책은 크게 환경금융(기후금융), 사회적 금융(포용적 금융), 인프라 금융(주거·에너지)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세운 110대 국정과제에는 이에 해당하는 정책이 다수 포함돼 있다.
▲녹색경제 전환을 위한 융합 클러스터 조성 및 기후 테크 등에 대한 지원 ▲안정적 주거 환경을 위한 부동산 세제 정상화와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생애 최초 주택 구입 가구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완화 등이 포함된 주택·금융제도 개선 ▲기업 혁신성장을 위한 세제 지원 및 금융권 ESG 분야 자금 지원과 중소 벤처기업의 ESG 실사 진단 지원 ▲금융 소비자 보호 및 권익 향상 ▲서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경제범죄 근절 ▲청년과 신혼부부, 생애 최초 계층에 대한 주거, 일자리, 교육 등 맞춤 지원 ▲취약계층 및 청년에 대한 지원 체계 마련 및 청년 도약준비금과 청년도약계좌 등 신설 ▲탄소 중립 한계기술 돌파를 위한 전용 R&D(연구·개발) 사업 신설, 제조업의 그린 전환 지원, R&D·시설투자 세액공제 대상 확대 등이다.
현재 이 중에서 실제 시행하거나 혹은 예산을 편성한 정책은 ‘청년도약계좌’와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그리고 변동 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 금리 정책 모기지로 전환하는 ‘안심전환대출’ 등이다.
추진 중인 정책으로는 250만호 이상 주택 공급과 유류세 인하 폭 확대 법안 등이 있다.
이전 정부가 탄소중립법을 통해 추진한 2조4500억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도 있다. 이 기금은 기획재정부가 운용하는데, 기업이 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발생한 유상할당 매각 수입금과 각종 환경 관련 세금으로 조성된다.
ESG 금융 정책은 주요국 정부의 핵심 국정 동력 중 하나다. 흔히 각국 정부가 경제와 산업구조에 큰 영향을 주는 어떤 대규모의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자 할 때 둘 중 한가지 목적이 동반된다. 바로 ‘경기 부양 또는 시장·가계 안정화’와 ‘산업 시스템의 미래 전환’이다. 최근 각국이 추진한 그린 정책은 두가지 목적 모두 적용되는 정책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의 ESG 정책 핵심은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기반한 ‘바이 아메리카’를 기조로, ‘탄소 중립을 통한, 또는 탄소 중립을 위한 미래 산업 인프라 구축과 일자리 확대’로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더 나은 재건’이란 슬로건을 바탕으로 코로나19 극복과 경제 회복, 중산층 재건에 주력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내세운 취임 100일 동안의 주요 성과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2억회 달성 ▲1조9000억달러(약 2112조원) 규모의 ‘경제구제법’ 통과 ▲2조2000억달러(약 2445조원) 규모의 일자리 계획 공개 ▲세제 개혁을 통한 법인세율 21%에서 28%로 인상 ▲글로벌 법인 세제 개혁 주도 등을 내세우고 있는데,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산업의 세계 시장 선도와 자국 이익 증대를 위해 ‘미국산 우대정책 강화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은 미국 중심의 핵심 산업 공급망 재편과 자국 산업보호,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항공·보건·에너지·첨단산업 분야 R&D를 위한 연간 225억달러(약 25조원) 예산 증액을 계획하고 있다.
나아가 현재 추진하는 미국형 ‘탄소국경조정’ 제도 도입은 다른 국가의 시멘트·석유화학·철강·반도체·컴퓨터 분야 기업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당연히 핵심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타 국가 산업 대비 경쟁력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막대한 금융자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각국의 ESG 금융은 자국의 산업 증진과 일자리 확산, ‘녹색성장’을 위한 핵심 정책으로 점차 자리 잡아가는 추세다.
녹색 금융과 사회적 금융의 상호 간 균형은 필수지만, 기본적으로 ESG 금융은 사회적 금융(포용적 금융), 인프라 금융(주거, 에너지) 분야를 주축으로 확대되는 방향성이 사회 건전성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
흔히 ESG라고 하면 환경 분야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회 분야에 대한 금융 지원도 매우 중요하다. 국민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포용 금융 시행으로 자칫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할 수 있지만, 이번 새출발기금과 같은 정책은 결국 사회와 산업의 건전성을 리셋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금융의 큰 역할 중 하나는 안전망이다. 따라서 사회적 금융과 포용 금융의 확대는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 어려움에도 축소돼서는 안 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사무대표 unsdgs@gmail.com
*UN SDGs 협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 협의 지위 기구입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