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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부를 때마다 저작권료 내는데, 전자책은 왜 안 내나” [이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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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03 15:00:00 수정 : 2022-10-03 15: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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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디지털 출판물 저작권 보호

웅진북센, 국립국어원 ‘말뭉치’ 구축에
출판사 허락 안 받고 1만5933종 사용
양측 타협점 찾지 못해 법적 다툼 예고

도서관 ‘전자책 관외대출’ 갈등도 지속
업계 “아무리 빌려봐도 저작권료 0원”
도서관 측은 “규정 없어 法 위반 아니다”

美선 라이선스 구입해 저자 권익 보장
유럽은 전자책 공공 대출 보상制 시행
“韓, 최소 OECD 수준 법제라도 갖춰야”

웅진그룹의 출판물류회사 웅진북센이 국립국어원의 ‘말뭉치’ 구축사업에 참여하면서 전자책 형태로 이뤄진 약 1만6000종의 출판물 저작권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 최근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전자책 저작권 침해 사례는 디지털 출판물 저작권을 둘러싼 국내 분규 가운데 단일 사건으론 최대 규모다. 피해 출판사들이 대책위원회까지 결성해 웅진북센에 대한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천명하는 등 집단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실제 법적 대응이 이뤄지고 재판에서 그 결과가 가려질 경우 전자책 저작권을 둘러싼 국내 논의에서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전자책을 비롯한 디지털 출판물의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도 점점 고조되고 있다. 2006년에는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도서 본문 검색 서비스를 둘러싸고 출판계와 갈등이 벌어졌고, 지난해에는 도서관들의 전자책 관외대출을 둘러싸고 출판계와 갈등을 빚다가 급기야 법정 다툼으로 옮겨 붙었다.

국립국어원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말뭉치’ 서비스 중단 안내문.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캡처

출판업계는 콘텐츠가 급격히 디지털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출판물의 저작권을 둘러싼 법제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용자 편의 증진과 함께 작가(저자)와 출판사의 권익도 함께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률과 제도가 개선되고 정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말뭉치’ 사업, 최대 규모 전자책 저작권 침해로 좌초… “곪던 문제 터졌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웅진그룹의 웅진북센은 2019년부터 시작된 국립국어원의 30억원 규모의 ‘문어 말뭉치’ 구축사업에 참여하면서 1226개 출판사의 저작물 2만53종을 빅데이터로 사용했다.

하지만 빅데이터로 사용된 전체 저작물 가운데 겨우 4060종만 저작권 대리인을 통해 해당 출판사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었을 뿐, 웅진그룹이 2010년 인수한 전자책 회사 ‘북토피아’의 콘텐츠인 1188개 출판사 1만5933종에 대해선 출판사의 사전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출판사들은 주장했다.

웅진북센 측은 이에 대해 “(우리가 인수한) 북토피아와 자산매매계약서 및 계약서 별지 등을 검토했지만, 관리 부족으로 매매계약서 외에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권리임을 입증할 만한 보완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웅진 측은 북토피아의 콘텐츠 제공 업체와 저작권 관련 정산을 진행 중이다. 문제가 된 1만5993종 가운데 전자책 정가의 70% 수준에서 3카피(copy)로 책정해 현재 30%(6194종)를 정산했고, 28%(5299종)는 정산 진행 중이다. 아울러 북토피아로부터 인수한 콘텐츠도 조속히 폐기하기로 했다. 국립국어원 역시 말뭉치 사업 중 문제가 된 문어 말뭉치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저작권을 침해받은 출판사들은 강하게 반발 중이다. 피해 출판사들은 지난달 23일 한국출판인회의 주재로 웅진북센과 간담회를 가졌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한 뒤, 지난 21일 대책위를 구성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출판업계에서는 그동안 전자책을 비롯해 디지털 출판물의 저작권에 대한 미비한 법제와 낮은 인식이 결국 국내 최대 전자책 저작권 침해 사건으로 이어졌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출판물 저작권 법제를 확실히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포털의 본문 검색, 도서관의 전자책 대여… 계속돼온 갈등

디지털 출판물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과 갈등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대표적 사례는 2006년 포털 네이버와 다음이 도서 본문 검색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나서면서 벌어졌다. 당시 네이버는 교보문고와 손잡고 각 출판사와 ‘전송권 이용 계약’을 시도했다. 네이버가 출판사들에 제시한 ‘전송권 이용 계약’에 명시된 검색 범위는 검색어 전후 3쪽, 전체 책 분량의 1% 이내였지만, 전체 검색 가능한 총량이 책 본문의 30% 이내여서 300쪽 안팎의 책 기준으로 90쪽을 도서 본문 검색 서비스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이에 대해 네이버의 행위는 출판물 저작권에 치명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며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네이버는 출판사별 계약 체결을 중단해야 했다.

2019년부터는 디지털 출판물의 대표적 유통 창구인 각급 도서관이 실시 중인 전자책 관외대출을 둘러싼 갈등으로 확산했다. 출판계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노래 부르는 횟수만큼 해당 곡의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가 지급되지만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아무리 빌려 봐도 최초 구매 비용 외에는 작가나 출판사에 돌아가는 저작권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도서관 측은 “일반 종이책을 도서관이 스스로 디지털화한 건 관내대출이 맞지만, 처음부터 전자책으로 제작된 것을 구입한 경우에 대해선 관련 규정이 없어 현행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맞서고 있다.

결국 지난해 5월 메디치미디어와 다산북스, 마이디팟 등 8개 출판사는 출판계를 대표해 전자책 대출 서비스를 하는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지금도 법정 다툼이 한창이다. 출판업계는 “저작권자와 배타적 발행권자인 출판사의 법적 계약 기간은 최대 3년에 불과한데도, 도서관들은 계약이 종료된 전자책들을 즉시 소멸시키지 않고 계속 쓰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비싼 라이선스 구입… 유럽은 공공 대출 보상제

디지털 출판물 저작권을 두고 많은 갈등을 빚어온 미국과 유럽 등은 시민들의 디지털 출판물 이용 편의 제고와 함께 저작권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즉 이용 편의는 높이되, 저작권에 대해선 철저히 보호해주는 윈윈 전략을 채택하는 셈이다.

미국은 디지털 출판물의 저작권 강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공공 기관이나 도서관들은 전자책을 구입하는 정책이 아닌 정가의 3∼5배나 비싸게 해당 책에 대한 사용 권한, 즉 라이선스를 사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아마존은 2015년부터 디지털 출판물의 저작권료를 전자책 다운로드 횟수가 아닌 각 페이지별로 작가에게 지급하는 정책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모두 이용자의 이용 편의를 높이면서도 저자 권익도 확실히 지켜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덴마크 등 많은 유럽 국가 역시 국가에서 공공 예산으로 보상금을 충당하는 방식으로 공공 기관 및 도서관의 전자책 공공 대출 보상 제도를 시행 중이고, 북유럽 국가들은 아예 전자책 플랫폼을 구축해 공공 대출 서비스에 직접 관여한다.

◆관련 법제 정비 시급… 늦으면 피해는 결국 창작자와 시민들

디지털 출판물의 저작권을 둘러싼 관련 법률과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거나 정비되지 못함으로써 작가와 출판사, 서비스 업체, 도서관, 정부 기관 등의 대립과 갈등도 위에서 본 것처럼 점점 첨예화할 조짐이다. 실제 법제 미비로 창작자들의 피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와 온라인매체 뉴스페이퍼가 2019년 전자책 출간 경험이 있는 창작자 34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전자책 출판 계약을 ‘종이책 계약과 별도로 체결’하는 경우는 16.7%에 불과한 반면 ‘종이책 출판 계약의 부속 계약 형태’(62.5%)나 ‘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음’(14.2%)이 다수를 차지해, 디지털 출판물은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더구나 ‘종이책과 함께 전자책을 출간’한 창작자(123명)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인세를 받지 못한 경험이 무려 47.2%에 이르고, 판매 현황을 보고받지 못한 경우도 53.3%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출판업계와 전문가들은 결국 디지털 출판물 저작권 법제가 정비되지 못하면서 그 피해가 창작자와 출판사를 거쳐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법제 정비를 촉구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저작권위원장 김선식 다산북스 대표는 세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디지털 출판물 저작권 법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나 공공 기관 등에서 디지털화를 서둘러 추진하려다가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며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출판선진국 수준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OECD 수준의 법제라도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출판협회의 박용수 상무 역시 “유럽은 디지털 경제법을 도입하면서 이용자 편의뿐만 아니라 창작자의 저작권도 철저히 보호하는 쪽으로 포털이나 공공 기관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창작자 저작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법제 정비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거들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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