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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실’→‘밴플리트홀’… 보훈처, 文 정부 때 붙인 회의실 명칭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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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19 15:00:00 수정 : 2022-09-19 11: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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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의 상징적 인물 밴플리트 장군 부자 사진 회의실 벽에 부착
박민식 “자유민주주의 위해 싸운 유엔참전용사 숭고한 희생헌신 기억”

국가보훈처가 전임 문재인 정부 때 붙인 회의실 명칭을 바꿨다.

 

보훈처는 청사 5층 회의실 명칭을 ‘평화실’에서 ‘밴플리트홀’로 변경한다고 19일 밝혔다.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평화실은 문정부 때 붙인 이름이다.

사진=뉴시스

새로 바뀐 밴플리트홀은 미 8군 사령관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고(故)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땄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딴 회의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유엔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을 통해 한미동맹과 보훈 외교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이날 오후 밴플리트홀에서 열리는 명칭 변경 행사에서 밴플리트 장군부자의 모습이 담긴 액자를 회의실 벽에 부착한다.

 

밴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11일 6·25전쟁에 미 8군사령관으로 참전해 중공군의 공세를 꺾고 38도선 북쪽으로 전선을 북상시킨 명장으로 유명하다.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 도착 직후 “승산이 없는 전쟁이니 동경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를 듣고, “나는 승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와 함께하기 싫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해 단번에 현장의 분위기를 바꾼 일화도 있다.

밴플리트 장군(오른쪽) 부자. 연합뉴스

한국 육군사관학교 설립에도 기여한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군의 아버지’로도 불렸다. 전역 후에도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를 설립하여 생의 마지막까지 한미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한 한미동맹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아들 제임스 밴플리트 2세도 6·25전쟁에 자원해 폭격기(B-26) 조종사(미 공군 대위)로 활약하다 1952년 4월4일 새벽, 북한의 순천지역(해주 부근)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대공포를 맞고 실종됐다. 밴플리트 대위를 찾는 수색이 시작됐지만, 밴플리트 장군은 “내 자식을 찾는 일로 다른 장병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며 수색을 중단시켰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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