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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檢·警 중대범죄 인식못해… 4건 중 1건 ‘처벌불원’ 기각 [‘신당역 스토킹 살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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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18 20:00:00 수정 : 2022-09-18 18: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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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최근 4개월 재판 분석

스토킹범죄 100건 중 53건 집유
벌금형 16건… 대부분 100만원 안팎
실형은 6건 불과 ‘솜방망이 처벌’

가해자 합의 빌미 접촉 못 막아
보복 두려워 사건 종결 선택도
공소기각률 다른 범죄의 25배

“스토킹 살해 계획범죄비율 63%”
2023년 수립 양형기준 강화 시급
재판부·수사기관 엄정대응 목소리

A씨는 지난해 11월 연인 사이였던 B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B씨를 스토킹하기 시작했다. 그는 경기 안양에 있는 B씨 가게에 찾아가 “다시 사귀자”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욕설을 퍼부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가게를 찾아갔고, B씨가 자신을 피하자 주방에 있던 식칼을 갖고 나와 “이제 나 못 봐, 죽어 버릴 거야!”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A씨는 법원으로부터 ‘접근 금지’, ‘연락 금지’ 등의 잠정조치 결정을 받은 후에도 세 차례 더 B씨에게 만남을 강요했다. 결국 A씨는 특수협박 혐의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여러 차례 스토킹해 피해자에게 큰 정신적 고통과 불안감을 주었다. 법원으로부터 잠정조치 결정을 받은 후에도 이러한 행위를 계속했다”면서도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유리하게 참작한다”고 판시했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전 직장 동료를 스토킹해오다가 살해한 ‘신당역 사건’처럼, 스토킹 범죄는 살인 등 끔찍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사법부가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당역 사건에서 피해자가 불법 촬영과 스토킹을 이유로 두 번이나 고소했음에도 법원이 가해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세계일보가 분석한 100건의 스토킹 사건 판결에서 재판부는 절반 넘게 집행유예 처분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보완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경찰, 검찰, 사법부가 스토킹을 중대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한 반복되는 비극을 막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18일 세계일보 취재진이 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을 통해 스토킹처벌법 혐의로 최근 재판에 넘겨진 사건 100건(4월28일~8월10일 판결)을 분석한 결과, 절반이 넘는 53건이 징역형 집행유예에 그쳤다. 벌금형은 16건으로, 대부분 100만원 안팎에 그쳤다. 징역 1년 등 실형은 6건에 불과했다. 스토킹처벌법은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원 이하, 범죄 당시 위험한 흉기를 소지했다면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5000만원 이하에 처할 수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으로 재판 없이 종결, 가해자가 무죄를 선고받은 스토킹 사건도 많았다.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공소 기각’된 사건은 100건 중 25건으로, 4건 중 1건꼴이었다. 이는 모든 범죄의 평균 공소기각률 1%의 25배에 달하는 셈이다.

 

반의사불벌죄 조항으로 가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며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이어가고, 피해자는 보복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에게까지 살해 협박을 하는 등 수차례 스토킹을 했음에도 공소가 기각된 한 사건의 판결문에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부탁으로 처벌불원서를 작성했고, 이는 피해자 본인이 작성한 것이 맞다’고 진술했다. 이는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적시됐다. 신당역 사건 피의자 전모(31)씨도 스토킹 혐의로 수사를 받자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연락을 수십 차례 한 것으로 조사됐다.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스토킹 범죄 사건들에 대해 재판부가 더욱 엄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살인 사건 중 스토킹 범죄가 선행된 경우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비율이 3배가량 높을 만큼 스토킹 범죄는 강력 범죄의 ‘전조증상’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등이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17~2019년 1심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살인(살인미수·예비 포함) 사건 336건을 분석한 결과, 살해 시도 전 스토킹이 선행된 사건의 비율은 37.5%일 정도로 스토킹이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들이 많다. 특히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비율은 63.5%로, 스토킹하지 않고 저지른 살인 사건(21.4%)의 3배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의 양형 기준은 이르면 내년 수립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양형 기준을 보다 높게 설정하는 등 재판부의 경각심을 고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여전히 스토킹 범죄의 본질이 남녀 관계에서 있을 수도 있는 경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재판부의 판단에 투영된 것 아닌가 싶다”며 “재판부를 비롯해 수사기관에서도 엄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처벌 규정에 비해 선고되는 형량이 낮아 범죄 예방 효과가 작다”며 “사안에 따라 면밀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지만, 강력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엄정한 판단을 위해 잣대가 될 수 있는 양형 기준을 높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포스트잇 추모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피의자 전모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19일 결정할 방침이다. 서상배 선임기자

가해자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하고 전문가의 빠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해자에게 신고하라고 스마트워치를 주는 것은 이미 가해자를 마주한 상황에서 전혀 효과적이지 못하다”며 “스마트워치를 가해자에게 채우게 하는 등 애초에 (가해자가) 접근할 경우 수사기관이 발 빠르게 막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해자가 벌금형에 그치거나 선처로 풀려날 경우 피해자는 다시 불안에 떨고 법에 호소할 의지를 잃게 된다”며 “범죄의 위험성이 높거나 잠정조치를 위반할 경우 실형을 선고하는 등 엄중한 처분을 하고, 상담 등 전문가의 조기 개입을 통해 스토킹 행위의 위험성과 재범 가능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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