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철학자/클레어 칼라일/ 임규정 옮김/ 사월의책/ 2만8000원
1843년 5월, 독일 베를린에서 시속 65㎞의 속도로 덴마크 코펜하겐을 향해 달리던 기차 안에 막 서른이 된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삼년 전 한 번의 운명적 연애를 했다가 이듬해 파경을 맞고서 “연애는 언제나 실존한다는 것의 의미와 관련된 교훈적 주제”라는 점을 깨달았고, 석 달 전에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철학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출간한 쇠렌 키르케고르였다.
귀향길에 오른 그의 가방 속에는 두 편의 원고가 담겨 있었다. 하나는 젊은 여성과 약혼하지만 마음이 변해서 파혼하는 남자 이야기를 담은 ‘반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창세기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담은 ‘공포와 전율’이었다. ‘반복’은 이미 집필이 끝난 상태였고, ‘공포와 전율’은 한창 집필 중이었다.

키르케고르는 귀향 이후 왕성하게 저술을 하면서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 카뮈, 사르트르 등에게 영감을 준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가 됐다. 이와 함께 헤겔, 마르크스, 니체와 함께 19세기 최고 철학자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삶이 편리해지고 안락해졌지만 이는 오히려 새로운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꿰뚫어 봤다. 즉, 물질적 삶이 편리하고 쉬워질수록 모든 삶의 방식에 매뉴얼이 생기는 한편, 전문가의 힘이 커질수록 오히려 개인의 불안감만 커지고 삶의 생동감이 실종된다고 통찰했다. 이는 또한 ‘누구로 존재해야 하는가’와 함께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에 관한 새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봤다.
그러면서 근대 철학의 추상 개념을 비판하면서 삶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누구인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통과 의심의 체험이야말로 온전히 인간답게 되게 하는 핵심적 수련이라고 봤다.
키르케고르와 관련한 다수의 철학서와 에세이 등을 집필해온 킹스 칼리지 런던의 철학과 교수인 저자가 실존주의 철학 선구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평전을 펴냈다. 키르케고르의 터닝포인트로 볼 수 있는 1843년 귀향 여행(제1부)을 먼저 서술한 뒤, 귀향 이전(2부)과 귀향 이후(3부)의 삶과 사랑으로 나눠 서술한다.
특히 일반적 평전과 달리 연대기적으로 서술되지 않을 뿐 아니라 회상이나 내면 묘사, 시간 건너뛰기 같은 소설적 기법이 적극 활용되는 점이 눈에 띈다. 다만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다루다 보니 개념이나 논리 전개에서 다소 어렵거나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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