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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보여주고 표정 들려주고… 장애·비장애인 관객 모두를 품다

입력 : 2022-09-06 21:00:00 수정 : 2022-09-06 22: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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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막 오르는 무장애 연극 ‘합★체’

장애·비장애인 부모 사이서 태어나
작은 키 고민 가진 형제 이야기 담아
수어 연기 ‘그림자 통역 배우’ 출연
배우·통역 연기합 중요… 연습량 배로

공연계 드문 ‘접근성 매니저’도 눈길
장애 감수성·무장애·무대 환경 조언
권지현 매니저 “배리어프리 많아져야
장애인 예술가 양성 교육기관도 필요”

지난 2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국립극장의 한 연습실. 국립극장 기획으로 오는 15∼18일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음악극 ‘합★체’ 제작진과 출연진이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고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음악극 ‘합★체’는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작은 키가 고민인 정반대 성격의 일란성 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다. 다양한 장애인과 비장애인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한글 자막과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함께하는 ‘무장애(배리어 프리, Barrier-free) 공연’으로 선보인다. 그만큼 연습장 풍경도 여느 공연들과 색달랐다. 연기하는 배우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배우 대사와 동작을 수어로 통역하고 따라하는 배우들이 눈에 띄었다. 이른바 ‘그림자 통역 배우’다. 수어 통역이 가능한 배우·무용수 3명과 무대 경험이 있는 전문 수어 통역사 2명이 그림자 통역 배우로 출연한다. 이 중 4명은 극 중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를 따라다니며 수어 통역을 하면서 안무와 연기도 소화하고, 나머지 1명은 라디오DJ ‘지니’역 배우의 음성 해설을 수어로 통역한다.

무장애 공연으로 기획된 음악극 ‘합★체’에서 각각 아빠·합·체 역을 맡은 김범진(앞줄 왼쪽)·이성민(〃가운데)·박정혁(뒷줄 가운데) 배우가 각자의 ‘그림자 통역’을 맡은 정은혜(뒷줄 왼쪽)·성지윤(앞줄 오른쪽)·송윤(뒷줄 오른쪽) 배우와 연습 중인 모습. 그림자 통역 배우들이 담당 배우 동작을 따라하거나 수화로 통역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그만큼 연습 과정에서도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음악극이라 역동적 동작도 적지 않은데 배우와 그림자 통역의 동선이 엉키거나 수어 동작이 가려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 극 중 동네 아주머니들이 가벼운 운동을 하며 대화하는 연습 장면을 지켜보는데 그림자 통역의 수어가 아주머니 역 배우의 팔 동작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잠깐, 손을 같이 흔드니까 수어 동작이 안 보인다. 다른 동작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김지원 연출이 재빠르게 그 장면을 지적하며 다른 동작으로 다시 연기하도록 주문했다. 청각장애인 관객들을 배려해서다.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 연출가이자 20여년간 장애예술인과 다수 작품을 만든 연출가다웠다. 갑작스러운 지시에 당황했을 법도 한데 해당 배우는 바로 천연스럽게 자전거 운동 기구에 앉아 발을 쓰는 듯한 동작으로 전환했다. 배우 센스에 감탄사가 나왔다. 물론 그림자 통역의 수어도 선명하게 보였다. 대사와 수어, 자막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는 그림자 통역과 합을 맞춰야 하고 대사도 애드리브를 하거나 일부 다르게 하면 안 된다. 보통 한 번 연습하면 될 장면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하는 이유다.

이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공연계에 생소한 ‘접근성 매니저’의 존재다. 김 연출이 간간이 대사 관련 자문 등을 구하던 옆 자리의 권지현(41·사진) 매니저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권 매니저는 고교 시절부터 아마추어 연극 활동을 한 경험과 접목하려 러시아에서 ‘국립 장애인 예술 아카데미’ 연극과 4년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후 2012년 발달장애 아동들이 편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권주리(작가 겸 연극 기획자)와 함께 극단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장애 아동·청소년 대상 연극 교육 활동과 장애인 예술 단체와 협업한 연극 연출 등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영국 등 공연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선 무장애 공연이 퍼진 게 3∼4년 전부터였고, ‘접근성 매니저’가 공연팀 안(제작진 구성원)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됐다”며 “기존에 배리어 프리에 관심이 많았거나 장애인 극단을 꾸린 기획자·연출가가 접근성 매니저를 병행하는데 10명 정도다. 나도 접근성 매니저로 참여한 건 이번 공연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접근성 매니저는 무장애 공연과 관련해 장애인 관객과 배우를 위해 개선해야 할 극장(공연장) 환경과 서비스, 무대 시설 조언은 물론 공연 연습 및 기획·홍보 단계에서 장애 감수성에 맞지 않는 부분을 바로잡는 데 도움 주는 일 등을 한다고. 예컨대 저신장 장애인 이야기가 나오고 합과 체 아버지 역할을 저신장 배우 김범진(31)이 맡은 이번 작품 준비 초반에 권 매니저는 “‘왜소증’은 비하 표현으로 인식되는 만큼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제작진에게 당부했다. 또 수어 통역 배우의 위치나 자막 배치 등 무대 디자인을 구성할 때 의견을 보태고 제작진과 출연진을 대상으로 장애 인식 교육을 해주기도 했다.

 

권 매니저에게 10년가량 장애인들을 위한 연극 활동을 하면서 국내 장애인들의 예술 창작이나 관람 문화 활성화 방안과 관련해 어떤 바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나마 서울은 조금 나은 편인데 지방은 장애인들의 문화 소외가 심각하다. 무장애 공연장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장애인 예술가를 육성하는 교육 기관이 절실하다고 했다. “역할을 잘 소화할 장애인 배우를 찾기가 어려워요.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 음악 등 역량이 충분한 기존 예술 교육 기관에서 장애인도 무리 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추도록 (정책적·제도적 지원을) 하면 좋겠습니다.”


글=이강은 선임기자·사진=서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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