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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미쓰비시 현금화’와 대법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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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29 23:25:07 수정 : 2022-08-29 23: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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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미룬 것도, 외교부 의견서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 19일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결정을 ‘연기했다’는 보도가 쏟아지자 이처럼 항변했다. 미쓰비시가 특허권 현금화 명령에 불복해 낸 재항고 사건에서 심리불속행(원심 판결에 문제 없다고 판단될 경우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절차) 기각 결정이 나오지 않자 외교적 파장을 고려해 대법원이 의도적으로 결정을 미뤘단 분석이 나왔고, 이를 반박한 것이다.

이지안 사회부 기자

앞서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 관련 해결 방안을 조속히 모색하기 위해 긴밀한 외교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며 현금화 결정을 미뤄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대법원은 억울하단 입장이다.

우선 심리불속행 기한 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미룬 게 아니라 절차대로 처리했다는 것. 다른 사건을 다 제쳐놓고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사건만 ‘후딱’ 처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항변한다. 2020년 기준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7만건이 넘는다. 대법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밀려드는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합의한다.

이번 재항고 사건의 주심이었던 김재형 대법관은 이달 초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물난리에 크게 다쳤다. 입원 치료까지 받았으나 퇴임 전 처리해야 할 사건이 산더미라서 며칠 만에 다친 몸을 이끌고 나와 일했다고 한다.

김 대법관은 다음 달 4일 퇴임한다. 그가 퇴임하기 전인 이달 안에 이번 사건의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주심으로서 검토한 주요 사건들은 퇴임 전 처리하는 게 통상적이다. 앞서 대법원은 미쓰비시가 자산 압류명령에 불복해 낸 재항고를 기각했다. 이번 사건 합의에 그리 오랜 시일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힘을 얻는다.

이런 추정이 현실화하면 정부로서는 외교적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한·일 외교 당국은 지난 26일 도쿄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을 논의하는 국장급 협의를 열었다. 한·일 관계 개선과 관련해 대화 자체를 거부한 지난해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일본은 현금화 개시를 한·일 관계의 ‘레드라인’으로 삼아왔다. 대법원 결정에 따라 협의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대법원이 조금 더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있다.” 외교부 관계자가 아닌 한 법조인의 말이다. 그는 “이전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는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느냐”라며 “후임 대법관에게 넘겨 사건 기록 검토하는 시간 정도만 주어진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고령의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꺼내기 힘든 말이다. 그러나 ‘우국충정(憂國衷情)’의 고언으로 들렸기에 전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우리 정부의 ‘화이트리스트(수출 관리 우대 조치)’ 복귀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 외무상은 이를 밝히며 ‘현금화에 이르면 심각한 상황이 되므로 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2019년 수출규제 조치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가의 우려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을 향한 고언을 전하는 이유다.


이지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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