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입퇴소 반복, 적응 못해
결국 중도퇴소… 이후 교류 끊겨
보호중단아동 지원 법근거 없어
사실상 ‘나 홀로’인 상황에 놓여
원가정에 돌아가도 관심 가져야
“경제지원 넘어 정서 관리도 필요” 하>
다니던 대학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보육원 출신 이환(가명·19)군의 장례식이 치러진 지난 24일, 또 한 명의 보육원 출신 청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김영주(가명·19)양은 지난 20일 3시간에 걸쳐 자살예방 상담을 받았지만 4일 후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가 남긴 12장의 유서에는 “삶이 고달프다”는 외로운 비명과 함께 수년 전 자신의 어머니처럼, 며칠 전 자신의 친구처럼 세상을 떠나겠다는 암시가 담겼다. 보육원 출신 청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체계적인 사후 관리와 심리·정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호중단아동’ 별도 지원 없이 사각지대
28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양은 8세 때 광주의 한 보육원에 입소했다. 김양에게는 장애가 있는 부모가 있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부모의 양육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김양이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의사를 표해 가정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부모의 양육능력과 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결국 다시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김양이 첫 보육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갔지만, 두 번째 보육원 역시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김양은 보육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주로 혼자 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2월에는 정서적·행동적 장애가 있거나 불량행위를 한 아동이 소년부 재판을 통해 가는 시설인 아동보호치료시설로 전원됐다. 1년간의 보호처분 기간이 종료된 2021년 2월, 만 18세를 한 달 앞두고 김양은 아동보호치료시설에서 나왔다.
정부는 김양처럼 보호자가 양육할 능력이 없는 등의 경우 ‘보호대상아동’으로 분류해 만 18세까지 양육시설·공동생활가정·가정위탁에서 생활하게 한다. 당시 김양이 보육원에 돌아갔다면 보호대상아동에서 만 18세가 되는 한 달 뒤 ‘보호종료아동’이 됐겠지만, 보육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김양은 극단적 선택을 한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 혼자 남은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김양은 아동양육시설을 중도 퇴소한 ‘보호중단아동’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김양처럼 보호가 중단된 아동은 1367명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아동복지시설 출입이 제한된 2020년을 제외하면 이전에도 보호중단 사례는 해마다 1400명에 달했다. 연 2500명 수준인 보호종료아동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지난해 이들의 보호중단 사유를 보면 ‘원가정복귀’가 708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른 시설로 전원’된 경우가 433명으로 뒤이었고, ‘입양, ‘가정위탁’ 순으로 많았다.
문제는 보호중단아동이 되면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모두 중단된다는 점이다. 현행 아동복지법에 따라 각 지자체는 보호대상아동과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정책들을 제공하지만, 김양처럼 시설에서 중도 퇴소한 보호중단아동은 지원할 법적 근거나 관련 지침이 없다. 김양은 18세가 되기 불과 한 달 전 시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간 탓에 보호종료가 아닌 보호중단 아동으로 분류, 그 지원조차 못 받게 된 것이다.
김양 아버지가 기초생활수급자로서 경제적 지원은 받긴 했지만, 김양이 삶을 비관하며 생을 마감한 이유는 무엇보다 정서적인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보호중단아동의 경우 복지시설 관계자들과의 접촉이 단절될 확률이 더욱 높다. 김양도 아동보호치료시설 퇴소 후 친했던 선생님들과 ‘잘 지낸다’는 메시지를 한두 번 주고받은 것 외에는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시설 관계자는 “퇴소 후 연락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면서 “연락처를 바꾼 후 시설에 알려주지 않아 먼저 연락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보호종료아동 절반 ‘죽고 싶다’ 생각
전문가들은 성인이 돼 시설에서 나온 보호종료아동뿐 아니라 보호중단아동들을 정서적으로 지원해줄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의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아동옹호센터 팀장은 “부모를 대신해서 정서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체계가 미비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지금은 보호종료아동을 관리하기 급급해 관심 밖이지만, 중도퇴소 아동들이 처한 어려움도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한 원가정으로 돌아간 아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우니 시설에 아이를 맡겼던 것일 텐데, 양육환경이 갑자기 좋아질 가능성은 낮다”며 “정부가 아이를 키운다는 책임감으로 아이가 원가정에 돌아간 뒤로도 잘 지내는지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설에서 보호기간을 모두 채우고 성인이 돼 퇴소한 보호종료아동조차 정서적 지원을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의 ‘아동자립지원 통계 현황 보고서’를 보면 보호종료아동 중 연락이 두절되는 비율은 2020년 23.1%를 기록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조사’(2020)에서는 보호종료아동 3104명 중 50.0%인 1552명이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18년 자살실태조사에서 청년(19~29세)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16.3%에 불과했는데, 보호종료아동은 3배 이상 높게 나타난 셈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대처하는 방법으로는 보호종료아동 37.4%가 ‘특별히 대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14.9%는 ‘혼자 음주·흡연 등으로 해소한다’고 했고, 19.7%만 ‘친구와 상담’을 꼽았다. ‘시설·그룹홈 선생님, 위탁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 비율은 2.8%에 그쳤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일반가정에서 유치원, 학교 등에 가면 선생님과 공적 관계가 형성되는데, 시설에 들어갔을 때는 선생님과 사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시설에서는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아이는 시설 선생님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아이의 편에 서서 아이의 최상의 이익을 지켜줄 존재가 필요한데, 사립 시설보다는 국가와 지자체가 아이를 책임져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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