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순환 필요 느껴 네프론 개발
쓰레기 가치 측정, 현금으로 지급
전국 369곳에 583대 설치·운영
학교에 무상 기증 등 공헌활동도
‘환경 노벨상’ 어스샷 최종 후보에
“순환체계로 사회 혁신 구현 믿음”
서울 홍대입구역, 이태원 경리단길부터 전국 곳곳의 학교와 아파트 단지까지. 최근 수년 사이 자판기 모양의 인공지능(AI) 재활용품 회수로봇 수백여 대가 각 지역에 들어섰다. 네프론이라 불리는 로봇은 페트병이나 캔을 넣으면 쓰레기 가치를 측정해 보상해준다. 기계 안에 탑재된 센서는 폐품 중 재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별한다. 이를 가공해 기업에 판매하고, 분리배출을 한 사용자는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받는 식이다.

네프론을 개발한 수퍼빈 김정빈 대표는 지난 17일 경기 성남 사무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인간의 서식지인 도시에서 ‘시티 메타볼리즘(Metabolism: 신진대사)’을 극대화하는 설계자가 되는 게 저의 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구 생태계에서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소화하지 못한 폐기물이 도시 밖으로 최대한 나가지 않도록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인간의 힘을 더 이상 지구가 견디기 힘들다. 100년 후에는 아이들이 고래나 사자를 자연에서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도시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수평적으로 팽창하는 게 아니라 수직적으로 응축해서 그 표면적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때 생길 수 있는 문제 중 하나가 폐기물”이라며 “순환경제에서는 폐기물의 수요자인 기업이 피드백을 주고, 그 피드백대로 폐기물을 선별해줄 수 있는 소통의 채널이 필요하다. 이를 디지털 정보체계로 형상화한 게 네프론”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40세의 나이로 국내 철강업체 코스틸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옳다고 생각하는 의사결정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창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쓰레기도 돈이다, 재활용도 놀이다’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의욕 있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2016년 경기 과천에 네프론 한 대를 처음으로 설치했다. 과천시에서 설치를 못 하게 해서 찾아가 ‘한 대만 설치해보게 해달라’고 무릎 꿇고 빌었다”며 “돈도 안 받고 한 대를 운영하게 됐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없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조금씩 사용자들이 생겼고 시범사업을 하는 걸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찾아와서 보고 기계를 구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업은 6년간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 네프론은 전국 369곳에 583대가 설치돼 있다. 여러 기업으로부터 그간 받은 투자액도 250억원가량이다. 김 대표는 “현재 매주 사용자들의 계좌에 지급하는 현금이 2000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수퍼빈은 사회공헌활동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전북 부안여고 학생들을 위해 네프론 한 대를 무상으로 기증했다. 부안여고에는 환경지킴이 활동을 하는 ‘다시씀’ 동아리가 있다. 이 동아리 학생들이 2년 가까이 부여군 등에 순환자원 회수로봇 설치를 요청했지만 여러 실무적 문제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다시씀의 활동에 깊이 공감한 김 대표가 학생들을 위해 결단을 내렸고, 지난달 부안여고 강당 앞에 네프론이 설치됐다. 김 대표는 “부안여고 동아리가 부안군을 움직이는 굉장히 중요한 환경 시민단체 역할을 한다”며 “학생들이 그 한 대를 선물받아 예쁘게 쓰고 있다는 게 저에게는 정말 의미 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수퍼빈은 경기 화성시에 있는 자체 폐기물 가공공장 내 유기견 임시보호소 운영도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수퍼빈 동료들과 함께 키우던 유기견이 최근 무지개다리를 건너 이별한 일이 계기가 됐다”며 “쓰레기를 소재로 만들어 다시 사회에 제공하는 것처럼, 버려진 반려동물도 정성껏 돌봐 사회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환경 노벨상으로 불리는 ‘어스샷’(Earthshot) 최종 후보에 올라 있다. 어스샷은 영국 윌리엄 왕세손이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국제상이다. 그는 “제 신조가 ‘좋은 어른이 되자’다. 이 과정까지 온 건 창업 후 7년간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한 데 대한 평가를 받는 것 같다”며 “제가 생각한 순환경제의 구현이 사회적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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