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약탈과 공물제에서 유래
16세기 후반 상시적 조세제도 확립
근대적 조세구조 17세기 英서 시작
시대와 나라 따라 규모·형태 제각각
세금의 역사로 인류의 경제사 탐색

세금의 흑역사/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홍석윤 옮김/ 세종서적/ 2만2000원
1799년, 유럽을 휩쓸던 나폴레옹 병사들이 이집트 원정에서 로제타석을 발굴해 프랑스로 가지고 들어왔다. 큰 주목을 받은 로제타석에는 같은 내용이 서로 다른 세 가지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세 가지 문자로 새길 만큼 중요했던 것일까.
많은 학자가 로제타석 문자를 해독한 결과, 돌에 새겨진 내용은 바로 세금과 관련한 사항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 사제들에게 이전에 누렸던 세금 특권을 부활해주고 다시 세금을 감면하는 혜택을 주었다.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 역시 세금이 있었다. 기원전 2500년 전에 만들어진 수메르 점토판에는 세금 납부 영수증이 새겨져 있을 정도이다. 문명은 재정이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문자로 기록된 인류의 역사는 한편으론 세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시작해 프톨레마우스의 이집트, 리디아, 로마제국 등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세금은 모두 약탈에서 시작됐다. 통치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용도로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강제력을 행사했다.
“당시 콜란츠 잭슨 장군이 장악한 정권에서 국방부와 국세청의 기능을 병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정도로 군대가 세금 징수에 동원되었다. 그의 군대는 주력 부대 둘로 나뉘어 배치돼 있었는데, 하나는 이시멜리아의 마약세 징수 부대였고, 다른 하나는 강력한 귀족 후계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소규모 포병 사형집행단이 포함되어 있는 소총수 세금 징수 부대였다. … 회계연도 말이 되면, 장군의 비행대가 탈주민들을 추적해 주변 국가까지 날아가 커피, 가죽, 은화, 노예, 가축, 무기 등 전리품을 가득 싣고 예산일에 맞춰 돌아오곤 했다.”
작가 에벌린 워가 발표한 장편소설 ‘스쿠프’에 실린 1930년대 가상의 나라 이시멜리아에서 권력자가 세금을 징수하는 장면이다. 현대사회의 복잡한 세금이 단순한 약탈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웃사이더로 여기는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을 약탈하거나 그들에게서 공물을 받는 관행이 세금 형태로 제도화, 보편화한 것이다.
다만 산업화 이전에는 지금과 다른 유형의 세금이 적지 않았다. 공공 의례 행사를 치르기 위해 부유층에게 징수했던 고대 아테네의 리터지, 살라미스 해전을 다룬 공연을 한 뒤 징수한 페리클레스의 세금, 아들에게 ‘돈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가르치며 소변에 부과한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세금…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통치자나 권력자들이 재정 수요를 안정적으로 채우기 위해선 피지배층이나 백성의 동의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근대적 조세제도가 요청됐다. 특히 16세기 후반이 되면서 국가 세수는 전시에만 조달하는 재정이 아니라 일반적 현실이 되면서 조세제도의 혁신이 중요해졌다. 주로 토지와 인두세를 중심으로 부과되던 중세의 세금과 달리 특별세, 독점판매세, 무역에 대한 과세, 특정 제품의 생산에 대한 소비세 등 다양한 세금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근대적 조세 구조는 1688년 명예혁명과 프랑스와 전쟁 이후 정치 상황이 안정된 영국에서 처음 생겨났다. 그리하여 근대적 세금 구조는 영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뻗어나가는 데 핵심 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이끈 조지 워싱턴 역시 영국의 사례에 주목하며 “현대 전쟁에서는 재정 상태가 얼마나 좋으냐가 승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물론 근대적 세금 구조를 형성하고 확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나라가 시민들의 크고 작은 저항이나 반란에 직면했고, 외국과 갈등하거나 심지어는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진 보스턴 차 사건은 가장 유명한 조세저항 사건일 것이다. 다만 잘못 알려진 바와 같이 차에 물린 세금을 올려서 발생한 게 아니라, 세금을 줄였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영국 정부는 1773년 아메리카로 수출되는 차에 대한 세금을 완전히 폐지했고, 동인도회사도 직접 차를 수출하도록 했다. 미국 보스턴의 밀수업자와 사업자들은 경쟁에 내몰렸고, 업자들과 친했던 선동가 새뮤얼 애덤스는 영국 정부를 성토했다. 결국 보스턴항의 차를 불태우고 내던져버리는 폭동으로 번진 뒤 독립전쟁으로 치달았다.
조세 제도는 근대 관료제가 형성되면서 안정적으로 확립됐다. 영국을 시작으로 1891년 독일에서 소득세를 도입한 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대다수 사람에게 부과됐고, 1920년 최종 소비자에 판매에 대한 세금인 부가가치세가 제안된 뒤 1960년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세금의 규모와 형태는 시대와 나라마다 달랐다. 페리클레스 치하의 아테네는 국가 생산의 10분의 1, 이슬람 제국의 압바스 왕조 초기에는 국가 생산의 3분의 1이 세금으로 징수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의 일본에선 쌀 생산량의 30% 이상이 세금으로 징수됐다.
모든 나라의 모든 세대는 자신들이야말로 전례 없이 무거운 세금을 낸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세금을 놓고 국가와 시민이 경쟁하고 숨바꼭질하고 갈등해왔다. 사회계약설의 토머스 홉스는 ‘내 것’에서 떼어내 바치는 행위는 불공평만큼이나 참기 어렵다고 설파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공공재정국 부국장인 마이클 킨과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인 조엘 슬렘로드는 세금의 역사로 인류 경제사를 탐색해나간다. 책은 국가와 시민 간에 영원한 도전과 응전이었던 세금이 역사 속에 어떻게 확장 및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고, 현실의 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거 사건들이 어떤 단서를 제공할지 등을 다각도로 들려준다.
세금은 오늘날 개인들이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국가의 통치 행위이자 강제 행위다. 저자들은 시민들의 저항을 낮추기 위해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기업이란 대리인을 통한 원천징수, 군대 징집 같은 노역 세금 등 우회적 징수로 다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미국의 경우 부유세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생산 단계마다 과세하는 부가가치세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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