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만난 자리서 '푸틴 처벌' 논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범죄 혐의로 처벌할 특별재판소 설립을 추진 중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마을을 찾아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정황을 살펴본 그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분개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2016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후안 마누엘 산토스 전 콜롬비아 대통령과 동행했다. 두 사람은 세계 각국 출신의 원로급 인사들로 구성된 단체 ‘디엘더스’(The Elders)의 회원이다. 2007년 역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주도해 설립한 디엘더스는 영국 런던에 사무실을 두고 각종 국제분쟁의 중재 및 평화적 해결에 힘쓰고 있다.
반 전 총장은 키이우에 들어가기 전 근처의 부차 마을부터 방문했다.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은 키이우로 진격하는 도중 부차를 거의 33일 동안 점령했는데 이 기간 주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학살을 저질렀다.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우크라이나 당국이 조사해보니 어린이 12명을 포함해 458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들은 비무장 상태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사실상 처형당한 것으로 드러나 국제적 공분을 일으켰다.
반 전 총장은 학살 현장을 둘러본 뒤 “끔찍한 잔학행위”라며 “반인도적 범죄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산토스 전 대통령 역시 “전 세계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아야 한다”며 국제사회를 향해 “평화와 자유를 되찾으려 노력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지해달라”고 촉구했다.
두 사람은 이후 볼로미디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났다. 이 자리에선 디엘더스가 러시아 정부, 그리고 푸틴 대통령의 책임을 묻기 위해 추진하는 특별재판소 설립에 관한 논의가 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반 전 총장과 산토스 전 대통령은 디엘더스를 대표해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과 아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발표했다.
디엘더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직후인 지난 3월5일 발표한 성명에서 “기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안고 있는 여러 한계 때문에 러시아 정부, 그리고 푸틴 대통령을 향한 제대로 된 형사책임 추궁은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이번 전쟁에만 한정한 전범 특별재판소를 세워 일정 기간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과거에도 ICC와 별개로 옛 유고슬라비아 전범 처벌만을 위한 형사법원, 르완다에서 자행된 100만명 학살 범죄자 처리를 위한 재판소, ‘킬링필드’로 널리 알려진 캄보디아 학살사태를 다룬 특별법정 등이 만들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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