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빈도 강우 대응으론 역부족
지구 온도 상승 2도로 억제해도
10년 빈도 폭우, 5∼6년마다 내려
尹대통령 “국민께 죄송” 첫 사과
당정은 특별재난지역 선포 검토
30년 빈도의 폭우를 막는 인프라는 해마다 강도를 더해가는 자연재해를 막기에 충분할까.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8일 서울에 쏟아진 시간당 116㎜의 비는 150년에 한 번 내릴 법한 큰비였다. 서울시는 주변보다 지대가 낮은 강남이 2006년과 2010년, 2011년 잇따라 수해를 입자 치수대책을 수립했다. 그 일환으로 우면산에서 흘러오는 빗물이 강남역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반포천으로 돌리는 ‘반포천 유역분리터널’ 공사가 시작돼 올해 6월 마무리됐다. 30년 빈도 폭우인 시간당 95㎜의 비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치수시설은 규모에 따라 다른 설계기준을 적용받는다. 하천은 ‘하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지방하천은 50년 이상 200년 미만,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의 주요 구간은 100년 이상 200년 미만, 국가하천은 200년 이상의 큰비에 대비해야 하고, 하수관거는 ‘하수도 시설 기준’에 따라 10∼30년, 빗물펌프장은 30∼50년의 치수계획에 맞춰 설계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유역분리터널에 적용된 ‘30년 빈도’는 외국과 비교해 특별히 높거나 낮은 기준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30년 빈도가 앞으로의 30년 빈도와는 같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2020년 환경부가 ‘기후변화 대응 홍수대책’의 일환으로 발표한 장래 강수량 및 홍수량 전망에 따르면 2050년 홍수량은 11.8%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역에 따라 최대 50.4%나 늘어나는 곳도 있다. 이에 따라 현재 100년 빈도로 설계된 댐과 하천제방 등의 치수 안전도가 지점에 따라 최대 3.7년까지 급격히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100년에 한 번 범람하도록 설계된 제방이 미래에는 3∼4년에 한 번 범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펴낸 제6차 평가보고서(AR6) 제1실무그룹보고서(WG1)에도 10년에 한 번 내릴 법한 강한 비가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오를 경우 10년에 1.5번, 2도 오를 땐 1.7번, 4도 오르면 2.7번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온도 상승을 2도로 억제한다 해도 10년에 한 번 오던 큰비가 5∼6년에 한 번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박숙현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 소장은 “과거 토지개발이 어려운 곳까지 개발이 이뤄졌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도시화로 인한 불투수층 면적의 증가와 향후 50년, 80년, 100년 빈도 홍수의 잦은 발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저류시설이나 빗물저장시설 같은 도시계획이 기후변화를 반영한 방재계획과 연계돼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치수계획 규모를 아무리 크게 잡아도 홍수를 완전히 예방하기란 어려우므로 취약계층 피해 최소화하 등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교수는 “재난 대비에는 목표치가 있다. 무한정 비가 와도 막을 수 있다는 개념은 없다”며 “그보다는 인명·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며, 우리가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치수예산 삭감으로 비판받은 서울시는 이날 향후 폭우 피해 예방을 위해 총 4조5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현재 30년 빈도 강우에 맞춰진 시간당 빗물 처리용량도 목표를 대폭 올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하천 홍수 및 도심침수 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인명피해 등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다시 한번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불편을 겪은 국민들께 정부를 대표해서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긴급 당정협의회에서 “수해지역에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