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제도는 세금을 ‘쓰는’ 사람을, 세금을 ‘내는’ 사람으로 만드는 절차입니다.”
오수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사진)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회생제도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 교수는 10년째 대법원 회생·파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도산법 전문가다.

주식·코인 투자에 실패해 빚더미에 나앉은 ‘2030’세대들은 회생 제도에 쉽사리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오 교수는 “2021년도 기준으로 과중채무자의 17%만이 회생·파산을 신청했고, 그중 청년들의 비중은 크지 않다”며 “젊은이들이 회생을 통해 재기해야 사회의 활력이 되는데, 다 늙어서야 도산 절차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미국에서는 ‘프레시 스타트(Fresh Start·새로운 출발)’를 회생의 원칙으로 삼는다. 면책을 통해, 채무자가 다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신속히 새 출발을 하도록 돕자는 것. 그것이 결국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회생·파산제도 이용률이 낮은 원인을 높은 ‘진입장벽’으로 진단한다. 그는 채무자들이 회생·파산을 주저하게 하는 대표적 장애물 중 하나로 ‘자존심’을 꼽으며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상담할 때 개인파산을 권하면, 그분들이 ‘너 나를 뭐로 보고 그러냐’고 한다. ‘파산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것에 대한 불안과 자존감 하락이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존심을 버리면, 다음으로는 ‘법적 제약’이 채무자를 구속한다. 대표적인 게 취업 제한이다. 파산자는 공무원·공기업 등에 취업할 수 없고, 전문직 자격을 취득하는 데도 제한이 있다. 오 교수는 “파산 선고를 받으면 채무자를 옭아매는 법률이 150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오 교수는 최근 서울회생법원의 주식·가상화폐 투자 손실금 처리에 관한 실무준칙 제정 관련 논란이 “의아하다”고 했다. 회생법원은 지난 6월 말 개인회생 채무자들이 갚아야 할 돈에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을 포함하지 않기로 하는 실무준칙을 만들었다. 그러자 “법원이 ‘빚투(빚내서 투자)’를 조장한다”, “도덕적 해이가 커질 것”이란 비판이 들끓었다.
오 교수는 “주식 투자 등의 손실금을 청산가치(채무자의 남은 재산)에 반영하는 건 그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일”이라며 “개인회생 절차에서는 채무자가 갚아야 할 돈을 ‘현재 재산가치+장래소득 일부’로 산정하는데, 현재 재산가치는 이 사람이 얼마를 투자했든 현재 남은 돈으로 계산하는 게 원칙”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실무준칙 제정은 오히려 손실금을 포함시키는 일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졌단 얘기다.
그는 오히려 법원이 더 적극적으로 채무자들에게 면책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많은 사람이 채무자에 대한 ‘면책’이 없으면 그 사람이 빚을 모두 갚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라며 “채무자가 갚을 능력이 있었으면 채권자가 가만 있었을까? 면책은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빚을 면책해줘서 손해를 입는 게 아니라, 이미 발생한 손해를 면책을 통해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많은 이들이 회생에 대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산절차 이용자의 불이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 교수는 “법령상의 차별부터 없애야 한다”며 “차별 규정은 효과는 없으면서 도산절차에 대한 사회적 낙인만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서울회생법원과 같은 ‘도산전문법원’ 증설도 중요한 정책적 목표로 제시된다. 그는 “회생위원이나 파산관재인, 판사 등이 법적 근거가 없는 자신만의 기준을 적용하거나 서류를 요구해 이용자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그런 ‘불확실성’은 회생절차 신청을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에 신속하고 공정한 처리를 위해 지방에도 도산전문법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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