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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으라, 당신 그림자 되겠다”… 성폭력 피해자 연대기

입력 : 2022-08-06 01:00:00 수정 : 2022-08-05 17: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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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김수정·김영주 감수/동녘/2만2000원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D/김수정·김영주 감수/동녘/2만2000원

 

그는 성범죄 피해자였다. 오랜 고민 끝에 ‘법대로’를 선택한 후 그가 마주한 현실은 가혹했다. 담당 경찰은 가해자와 호형호제하며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고, 변호사는 왜 수사관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않았냐고 그를 질책했다. 좌절하지 않고 수차례 대질신문과 조사 끝에 검찰의 기소를 이끌어냈지만, 재판 과정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공판검사’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처지였고, 가해자 변호사는 “진짜 피해자라면 증인석에서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며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어쨌든 결과는 가해자 구속.

 

하지만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예민하고 끈질긴 미친 X’라는 손가락질이었다. 게다가 출소한 가해자는 피해자 정보와 영상 유포 암시 글을 올렸다. 가해자의 보복 협박에 다시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이 한다는 말은 고작 “당하면 오세요.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였다. 그러는 동안 그의 삶은 무너져내렸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졌고, 오랜 정신적인 고통으로 정확한 문장 구사조차 되지 않았다. 문장연습을 위해 ‘트위터’에 가입했고, ‘마녀’라는 닉네임으로 그는 조금씩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같은 어려움을 겪은 여성들이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렇게 그는 이름도 얼굴도 베일에 가린 ‘반성폭력 활동가 D’가 됐다. 

 

신간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는 D의 오랜 연대의 기록이다. 처음엔 메시지를 받은 피해자 개인의 옆에서 조언하며 ‘직접적 연대’로 시작했다. 수사와 재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이제는 전국의 경찰, 검찰, 법원을 감시하며 일반 시민과 함께하는 ‘간접 연대’로도 폭을 넓혔다. 직접 연대 당사자가 아닌 사건의 법정에서 ‘방청 연대’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책에는 배우 조덕제 사건, n번방 사건,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미국 송환 등 대한민국을 뒤흔든 다양한 사건이 등장한다. 단순한 ‘일지’가 아니다. 성폭력뿐 아니라 그 이후 2차 가해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피해자 입막음용 고소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실제 법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법정에서 좌석의 위치, 경찰과 검찰 수사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피해자 권리 및 보호 제도, 가해자의 ‘보복성 고소’와 관련된 명예훼손죄 종류 등 처음 범죄 피해자가 된 사람들에게 낯선 정보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 모든 것은 형사사법 시스템 안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피해자를 위한 정보다.

 

저자는 서문에서 “살아남은, 그리고 살아남지 못한 피해자들의 기록이다. 그 피해자들이 다른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연대의 목소리다. 섬처럼 떨어져 있던 피해자들을 연결하는 다리”라고 책의 취지를 설명했다. 10여 년 전 홀로 이 모든 것을 감당했던 그는 많은 피해자에게 말한다. ‘일단 살아만 있으라’고. ‘당신의 그림자가 되겠다’라고.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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