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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엽의고전나들이] 다홍치마에서 개살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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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04 23:21:19 수정 : 2022-08-05 09: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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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산골에 무식한 사람이 살았는데, 사위만큼은 천하에 유식한 사람을 얻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무 조건 따질 것 없이 식자 하나만을 보고 사위를 골라 들였다. 그런데 혼례를 치른 밤, 난데없는 호랑이가 나타나서 장인을 물어갔다.

사위가 나서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사위는 마을 사람을 관가에 고발했다. 고을 원님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간밤의 일을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이 희한했다. “자다가 무슨 소리가 시끄러워서 일어나 보니까, 무슨 ‘워워워∼’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다시 잤습니다.” 원님은 다시 사위에게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물었다. 사위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어 촌인들! 원산호가 근산래하야 아지부를 호식거했으니, 지총자는 지총래하시고 지봉자는 지봉래하시사.”

세상에, 그 위급한 시간에 터진 문자속이라니 기가 막힌 일이다. 먼 산의 호랑이가 가까운 산으로 와서 우리 아버지를 물고 갔으니 총을 가진 사람은 총을 들고 오시고 몽둥이를 가진 사람은 몽둥이를 들고 오시라는 말을 한문으로 읊어댄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니 나올 리가 없었다. 사정을 들은 원님은 다시는 그런 문자 쓰지 말라며 훈방 조치를 내렸으나 사위의 문자속은 끝나지 않았다. “갱불문자하겠습니다.” 다시는 문자를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렇게 또 문자를 써서 드러냈다.

한낱 옛날 우스개에 그칠 이 이야기가 여전히 의미를 갖는 까닭은 이야기 속 장인과 사위가 보여준 허세와 허영심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 같다. 내게 없는 걸 구해보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구하려면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추는 게 순리이다. 제 구매력의 한계는 생각하지 않고 눈만 높인다면 필경 어느 한구석은 모자란 물건을 구할 수밖에 없다. 그 유식하다는 사위가 제 일이 급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마당에 내뱉은 첫마디가 “어 촌인들!”이라는 것은 식자 뒤에 감추어진 어리석음을 웅변한다.

돌아보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며 앞뒤 가리지 않고 빛깔에만 꽂혔다가 “빛 좋은 개살구”로 쓴맛을 본 일이 제법 있는 것 같다. 헐값에 사서 폭리를 취하겠다는 허랑한 마음이 공연한 함정을 만들어 두지나 않는지 살필 일이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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