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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화=민화’ 미술사 왜곡… “관객 기만” “엉터리” 혹평 쏟아져

입력 : 2022-08-04 20:25:25 수정 : 2022-08-04 20: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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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채색화展’ 3대 논란

곳곳에 채색화·민화 설명 뒤섞여
한국 채색화 역사 정립 의미 무색
미술전문가 “정체불명 잡동사니”
홍보관 “두 개념 동일시 안 했다”

아마추어 그림 대표작 전시하는 등
작가·작품 선정 과정도 문제 많아
이건희 기증作 연속 전시도 도마
미술관 “문제 없다” 반박 후 철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생의 찬미:한국 채색화 특별전’은 최근 열린 전시 중 유례없는 논란이 일고 있는 전시다. 여러 비판이 제기되는데 이를 역사왜곡·작품선정·작품관리 3대 쟁점으로 살펴봤다. 이를 위해 지난달 21일 전시장을 찾은 뒤 전문가 의견을 구했다.

이건희컬렉션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힌 이상범 ‘무릉도원’이 약 11개월간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에서 전시된 뒤 11일을 쉬고 다시 ‘생의 찬미:한국채색화특별전’에 나와 있는 모습. 바로 옆에는 성파의 옻칠 작품 ‘금강전도’가 나란히 걸려 있다.

①역사 왜곡

이번 전시는 국립미술관이 최초로 ‘한국의 채색화’란 타이틀을 내 건 전시다. 한국 채색화 역사를 정립하는 첫 자리인 셈이다. 하지만 의미와 중요성이 무색하게도 ‘엉터리’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체불명의 잡동사니”라는 혹평을 넘어 “불쾌하다”, “분노한다”고 말한다. 국립예술기관의 “역사 왜곡”이자 “대중 기만”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먼저 ‘채색화’ 개념 설정부터 문제로 꼽힌다. 학계는 먹으로 그린 수묵화를 한 축으로 하고, 이에 상대적인 개념인 채색화를 구분한다. 채색화에는 궁중장식화, 불화, 산수화, 민초들의 그림인 민화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민화 전시를 열고 이를 상위개념인 채색화라 부르고 있다”는 지적을 하는데, 전시장 실상은 그보다 더 중구난방이다.

전시장 곳곳 설명에 채색화와 민화 설명이 뒤섞여 있다. 민화에 담겼던 소박한 길상(吉祥)과 벽사(僻邪)의 역할을 언급하면서 정작 민화라는 말은 빼는가 하면, 민화를 설명하는 자리에 채색화란 용어를 썼다가, 민화 특성을 채색화 전체 특성으로 설명하는 문구가 쓰여 있기도 하다. 한 문단 안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시 후반 연표를 보면 우리 미술사를 ‘채색화’와 ‘한국화’로 구분해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정리했는데, 채색화 부분은 민화라는 말을 처음 만든 야냐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존 채색화사(史)에 포함됐던 창덕궁 부벽화 제작, 이당 김은호(1892~1979·친일행위자) 등은 채색화가 아닌 한국화 파트에 적혀 있다. 채색화, 한국화 연보는 각각 민화사, 채색화사를 잘못 쓴 것처럼 보인다.

황정수 미술평론가는 “보통 한국 미술에서 채색화라 하면 남종화에 대비되는 북종화의 채색화를 의미한다. 먹과 담채를 사용하는 남종화와 달리 채색 위주로 두텁고 진하게 그린 것”이라며 “서양화는 색으로 그리기 시작해 채색화란 말이 없는데, 동양화는 먹으로 그리기 시작했기에 그 상대 개념으로 채색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화 전시를 하려던 모양인데 갑자기 ‘한국 채색화전’이라고 해 놓으니 우리가 알고 있던 채색화 개념이 완전히 흔들리고, 미술사 왜곡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예사가 이렇게 했을 리는 없고 훈수가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공공미술관장 출신 미술사 박사는 “여러 문제 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틀린 게 바로 ‘한국 채색화 특별전’이라는 제목 자체”라고 했다. 그는 “이 제목은 너무나 중요한 콘셉트였음에도, 너무나 얕은 전시가 돼 보기에 불편한 것”이라며 “공부가 덜 됐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사실 동양 미술에서 색깔이 있는 작품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원래 청록산수화에서 시작한다. 동양 사고구조에서 색을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으로 구분했을 때, 유럽은 색이 있는 것이 ‘리얼(real·실제)’이라고 보지만 동양 사상은 반대로 색을 걷어내 본질을 봐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그런 맥락에 대한 공부 없이 표피적 전시가 됐다”며 “르네상스 작품을 모아놓고 어떤 철학에 기반했는지 없이 ‘르네상스 색깔전’이라는 전시를 한다면, 이게 얼마나 이상하겠느냐”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담당 학예사와 학예팀장은 취재 문의에 응하지 않았고 대신 홍보과 관계자가 반박했다. 민화와 채색화를 동일 개념으로 규정한 이유를 묻자 홍보관은 “오해다. 채색화와 민화를 같은 개념으로 본 전시가 아니며, 우리도 채색화를 더 큰 개념으로 본 거다”라고 했다.

하지만 채색화와 민화를 동의어화한 비약은 또 발견된다. 관람객이 가져가도록 비치된 교육·체험용 자료를 보면, ‘채색화는 먹으로만 그린 문인화와 다르게 아름다운 색으로 칠하는 그림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전통 채색화를 민화라고도 하는데’라며 ‘채색화=민화’라는 등식을 세운다. 이어 ‘채색화(=민화)’의 종류로 벽사도, 궁중장식화, 화조도, 문자도, 어해도, 책가도, 산수도가 있다고 설명한다. ‘왕실 그림이 민화의 한 종류, 양반 계층 그림도 민화의 한 종류’라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황당한 세계관이 창조된 셈이다.

②작가·작품 선정

전문가들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작품 선정까지 문제라고 지적한다. 거론되는 사례는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내가 왜 채색화가냐”고 오히려 주변에 의문을 호소했다는 모 중견 화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과의 친분으로 전시에서 대표작이 됐다는 의혹을 받는 불교 인사 A, 윤 관장이 2019년까지 이사를 지낸 B화랑 재단 관련 작가 C 등이다.

황 평론가는 “민화를 앞세운다 해도, 어떻게 아마추어로 그림을 그리는 A 그림이 우리나라 대표적 채색화 작품으로 그 넓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느냐”며 “검증받지 않은 작가, 그림들을 한국의 대표 채색화라 하고, 안상수, 오윤의 흑백 작품까지 채색화라고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개탄했다.

미술관 홍보관은 “A 스님과 친하지 않은 분이 문화계, 미술계에 어딨느냐”며 의혹을 일축했다. 또 “C 작가 작품의 경우도 십장생, 일월오봉도 이미지를 보고 학예사가 선정한 것”이라며 “윤 관장님은 이 작가를 알지도 못할 것이라고 (학예사가) 한다”고 전했다.

 

③이건희컬렉션 훼손 우려

이건희컬렉션 기증작인 이상범 ‘무릉도원’(1922)은 작품 관리 논란까지 불렀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주최로 지난해 7월 21일부터 올해 6월6일까지 11개월간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한국미술명작’전에 나온 바 있다. 비단에 채색 방식으로 제작된 100년 된 고서화여서 극도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1년 가까이 전시장에 쇼케이스도 없이 노출됐는데, 이번 전시에 연속해서 나오자 전문가들 우려가 나왔다. 적게는 3개월, 길어도 6개월 이상 내놓아선 안 되며, 전시 후엔 그보다 훨씬 긴 휴식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7월2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생의 찬미:한국 채색화 특별전’ 현장. 김종학의 ‘현대모란도’(2006)가 전시됐던 자리에 작품은 없고 작품 이미지를 컬러인쇄한 A4용지가 붙어있다. 그 앞에는 ‘죄송합니다. 작품상태 점검중입니다’라는 안내가 있다.

특히 같은 전시장 안에서 더 황당한 상황도 목격된다. 김종학의 ‘현대모란도’(2006)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작품이 없는 것. 대신 ‘죄송합니다. 작품상태 점검 중입니다’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미술관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무릉도원’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종료일(6월6일)보다 17일 전인, 5월20일에 변관식의 ‘계산춘재’로 교체됐고, 6월1일부터 채색화 특별전에 나왔다고 밝혔다. 홍보관은 “그 사이 보존실에서 상태 점검을 했고 문제가 없어 채색화전에 나온 것”이라고 했다. 같은 공간의 ‘현대모란도’에 대해서는 “그쪽 벽면 습도가 갑자기 올라가 일시적으로 보존실로 갔다”며 “‘무릉도원’이 걸린 위치와는 달라 ‘무릉도원’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채색화전은 1, 2부로 나눠 고미술품, 자수 등은 1부에만 보이고 교체예정이었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전시 시작 때 이 같은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결국 미술관은 ‘무릉도원’ 등 4점을 지난 1일자로 철수했다. 지난해 7월21일부터 올해 5월20일까지 10개월 전시되고 11일간 보관실에 둔 뒤, 2개월간 다시 전시된 셈이다.

한 공공미술관장 출신 인사는 “‘현대모란도’ 상태에 문제가 생겼다면 다른 작품으로 교체해 걸면 되는데 그냥 빈자리로 방치한다는 건 국립답지 않은 운영 미숙”이라고 지적했다. 9월25일까지.


글·사진=과천=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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