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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에 여름이 왔다. 지금은 시장도 정비되고 길도 넓어지고 신축건물도 들어서고 있지만 가리봉엔 여전히 쪽방이 많다. 쪽방에는 주로 중국에서 온 일용직 건축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몇 년 전 쪽방을 찾아간 일이 있다. 둘 다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가정이었다. 영희씨는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으나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아홉 가구가 사는 집은 부엌 딸린 방이 하나씩 있었고 화장실은 공용이다. 방은 어두웠고 습했다. 냄새가 났고 끈적거렸다. 바퀴벌레가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밥그릇이 방바닥에 있었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철수네 집은 이층에 있었다. 겨울에 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부루스타에 수도꼭지 하나가 겨우 놓인 부엌에서 많은 걸 해결했나 보다. 방은 딱 싱글사이즈 이불 크기였다. 아버지는 지방으로 일하러 가고 잘생긴 철수 혼자 며칠째 학교에 안 가고 방에 있었다. 영희씨네가 밥상도 없는 것처럼 철수네도 비닐 보따리 몇 개만 있었다.

당시의 결과를 얘기하자면 영희씨네 아이는 낮에라도 씻기고 밥 먹일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아서 보냈고, 철수는 아버지와 오랜 실랑이 끝에 엄마가 있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쪽방에 가족이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수면과 식사를 해결하는 숙소 같은 곳이다.

장마와 폭염 중에 쪽방이 나란한 골목길을 걸을 때 준비할 게 몇 가지 있다. 먼저 오감을 잠재워야 한다. 잊히지 않는 냄새와 비루한 지난 풍경을 떠올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저녁나절 벌어지는 시끄러운 가맥 풍경과 상의를 탈의한 주민들의 풍채를 익살로 여길 수 있다.

가리봉을 묵상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2004년 구로공단역은 구로디지털단지역이 되었고 가리봉역은 2005년에 가산디지털단지역이 됐다. 역 주변에 빌딩이 들어섰고 4차 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같은 구로공단의 역사를 지녔고 도보로 무려 5분 거리인데 가리봉동은 여전히 가리봉이다. 1970, 8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살던 숙소가, 벌집이라 불리던 그 집이 반세기가 돼가는 지금도 그대로 가동되고 있다. 2020년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디지털단지가 아닌 인근 건설현장으로 일하러 간다. 중국인이다.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가리봉은 일자리에 접근하기 쉽고 노동력을 저렴하게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지역으로 알려졌다. 가리봉에서 돈을 벌어 구로동이나 대림동으로 이사 가는 게 많은 이의 계획이란다. 그 옛날 구로공단 노동자에게도 가리봉은 그런 곳이었을 게다. 집주인에게 가리봉은 어떤가? 별로 투자하지 않아도 세입자가 끊이지 않으니 몰려드는 외국인 근로자를 마다할 리 없다. 인력이 밀집되어 사람 추려가며 일을 부릴 수 있으니 건축시장에서도 이들을 마다할 리 없다. 당사자끼리 박자가 맞으니 주거환경을 개선하라는 얘기는 허공에나 울린다. 나 역시 이들 조합이 만들어가는 세상에 승차해서 살고 있으니 까탈 부리지 말자며 가리봉을 걷게 된다.

마무리는 건축노동자들의 퇴근 행렬을 보는 것이다. 에어컨 밖은 위험한 여름이다. 내리쬐는 햇빛과 열기를 감내하며 뜨겁게 일하다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모든 불평을 잠재운다.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는 밤이 되길, 쉴 만한 집이 되길 기원하며 걷게 된다. 여름이 빨리 가면 좋겠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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