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 정상들은 쉴 때는 확실하게 쉰다. 1년에 30일 이상 휴가를 즐기는 게 보통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 4년 동안 휴가로만 131일을 썼다. 1년 평균 33일을 사용한 셈이다. 오바마가 휴가를 오래 간다고 비난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보다 더 긴 휴가를 사용해 구설에 올랐다. 검소했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도 1년에 한 달가량의 휴가는 반드시 챙겼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흑해 연안이나 남시베리아 등을 찾아 긴 여름휴가를 보내곤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휴가복이 없는 편이다. 1년에 일주일 정도 여름휴가를 가지만 그나마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하기 일쑤다. 공교롭게도 이때 대형 사건·사고가 터져 휴가를 취소하거나 관저에서 지내는 경우가 잦았던 탓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기도 파주·연천의 집중호우로 휴가 하루 만에 복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IMF 사태로, 임기 말엔 세 아들의 비리 연루로 휴가를 반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임기 5년간 세 차례나 ‘관저 휴가’를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청와대를 지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첫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애초 지방 휴가지 방문을 고려했으나 내홍에 휩싸인 여당 상황과 20%대로 곤두박질친 지지율 등을 감안해 집에서 쉬기로 한 모양이다. 의도치 않게 ‘방콕 휴가’가 됐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계속 댁에서 오랜만에 푹 쉬고 많이 주무시고 가능하면 일 같은 건 덜 하면서 산보도 하고 영화도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푹 쉬기는 어려울 것이다. 골치 아픈 현안들이 수두룩한 까닭이다.
대통령실은 여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 “(윤 대통령이) 휴가기간에 어떤 쇄신을 한다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근거가 없는 것들”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이 인정하든 안 하든 현재 지지율은 분명한 위기다. 지금 중요한 건 거창한 국정 구상이 아니다.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그래야 해법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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