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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되새겨지는 고결한 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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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31 23:26:18 수정 : 2022-07-31 23: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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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과 친일 - 백년 전 그들의 선택.’ 용인에 위치한 ‘경기도박물관’에서 4월27일부터 9월12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의 타이틀이다. 특별전에서 본 “힘이 있는 한 움직여야 한다. 오늘(3·1 독립운동)이 이 세상에서 밥을 먹는 마지막이다(정순영)”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항일의 선택은 생명과 바꾸는 장엄한 결단이었다. 독립투사들의 말은 진중했고, 자신이 한 말을 목숨처럼 여겼다. 요즘처럼 팬덤의 극단적인 혐오의 말을 ‘세계사적 의미’ ‘고맙잔아’ 하면서 견강부회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심산 김창숙(1879∼1962)은 일제의 고문으로 끝내는 하반신이 마비된 독립투사이다. 말년에는 정치보다는 유교 이념에 입각한 교육을 위해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의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학장으로 봉사했다. 심산은 집 한 칸도 없이 궁핍한 생활 속에서 여관과 병원을 전전하다가 국민의 애도 속에 숨을 거두었다.

 

심산이 대한민국 유림(儒林)이 청한 독립운동의 사명을 받들어 해외로 떠나야 할 때 늙고 병든 어머님 생각으로 주저했다. 심산의 어머님은 “네가 이미 나라 일에 몸을 허락하였으니 늙은 어미를 생각하지 말고 힘쓰라”고 개연히 명했다. 열 걸음에 아홉 번을 돌아보는 십보구고(十步九顧)의 아픔으로 차마 앞으로 못 나가는 심산에게 “네가 지금 천하 일을 경영하면서 오히려 가정을 잊지 못하느냐”라고 꾸짖었다(‘김창숙’, 심산사상연구회 편). 심산의 유일한 혈육은 누이동생 ‘이실’로, 남편이 요절하여 24세에 일점 혈육이 없는 처지였다.

 

심산이 중국에서 대구 “왜놈의 감옥으로 잡혀오자” 이실은 손수 음식을 장만하여 하루에 세 번씩 옥문을 찾았다. 1년9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으니 “교활 무례한 왜놈들도” 감탄하고 존경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심산이 대전으로 이감되어 병이 위독하자 수의를 만들어 한 달이 넘도록 울며 옥문을 지키니 옥리도 감동하여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을미(1955)년 겨울 병을 조리하고 있던 심산은 병상의 이실을 창황히 만났다. “병은 이미 할 수 없이 되었어요. 내가 여기 머물러 있는 것은 다만 오라버니를 한번 만나보고 영결하기 위해서요” “사람은 필경 한번 죽는 것이니 오라버니는 슬퍼하지 마오”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심산은 진보적 유학정신, 일제와 비타협·불복종, 민족과 국토가 두 개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민족 분열의 항구화를 걱정하는 민족주의자로 세상적으로 외로운 일생을 살았다. 공허·난폭·무책임한 언행이 난무하고, 개인 간 가족 간의 신뢰를 허물어뜨리는 언행이 범람하는 세상이다. 겉과 속, 마음과 몸이 일치하는 고결한 세계를 담고 있는 심산 일가의 언행이 우러러만 보인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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