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유지 ‘컬러풀 대구’→ ‘파워풀 대구’
여야 권력 바뀐 대전도 사실상 교체 예고
‘다이내믹 부산’·‘온리 제주’ 비교적 ‘롱런’
‘아이러브뉴욕’ 기념품 등 관광자원 활용
‘아이엠스테르담’ 조형물 사진명소 유명
2008년부터 사용 ‘비 베를린’ 현재도 응용
“도시 정체성 담아내는 작업 가장 중요해”

한국은 권력기관이나 중앙정부의 수장이 바뀌면 기관의 이미지와 상징부터 바꾸곤 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전임자 색깔 지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지 변화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을 드러내곤 한다.
6·1 지방선거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광역 지자체장의 당색이 변하면서 일부 지자체에서 전임 단체장이 유지해 온 도시브랜드 교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브랜드를 통해 도시이미지에 변화를 주겠다는 의도다. 이에 따른 예산 낭비 지적과 도시 정체성 논란이 적지 않다. 도시이미지 변화 노력이 양면적인 평가를 받지만, 해외의 사례를 적극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가령 미국 뉴욕에서 4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아이러브뉴욕’(I♥NY)처럼 세계인에 각인되는 도시브랜드를 위해서는 일관적인 이미지 구축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때만 되면 브랜드 교체하는 지자체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 박원순 전 시장 당시 탄생한 도시브랜드 아이서울유(I·SEOUL·U)는 새 브랜드로 교체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임기 초 ‘행정의 연속성’을 들어 서울의 브랜드 교체에 대해 선을 그었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년까지 브랜드를 교체하는 가닥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로운 서울시 수장의 의지대로 진행된다면 8년만의 새 브랜드 교체다. 오 시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서울유는 초기부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강한 비판이 있었다”며 “바꾸고 싶었지만 조례로 돼 있어 시의회 과반수 찬성이 필요해 시도조차 못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관광재단과 함께 ‘마이 소울, 서울’(MY SOUL, SEOUL)이라는 문구를 등장시켰다. 전문가 의견과 시민 공모 등을 통해 내년까지 새 브랜드를 결정한다는 게 서울시의 방침이다.

전임자가 같은 당 소속이었던 대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홍준표 시장이 지휘봉을 잡은 대구시는 18년을 유지해온 도시브랜드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 교체작업에 나섰다. 홍 시장이 선택한 새 도시브랜드는 ‘파워풀 대구’다. 시정 슬로건과 브랜드를 통합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컬러풀대구와 같이 이미지 위주의 보여주기식은 옳지 않다”며 교체 배경을 설명했다. 대구의 대표 축제 ‘컬러풀 페스티벌’도 ‘파워풀 페스티벌’로 이름이 변경됐다. 갑작스런 도시브랜드 교체에 대구의 시민 사회에서는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대구시의 브랜드 슬로건은 정체성과 미래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컬러풀 대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 권력교체가 이뤄진 대전시도 지난 2년간 사용한 ‘대전이즈유’(Daejeon is U)라는 브랜드를 사실상 교체하기로 했다. 이장우 시장은 앞으로 대전이즈유를 홍보·보도용으로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전시는 2004년 탄생한 장수 브랜드 ‘잇츠 대전’(It’s Daejeon)을 폐기하고 2020년부터 대전이즈유로 변경, 사용해왔다. 시는 당시 잇츠대전 브랜드의 인지도가 낮고 의미가 모호하다는 지적에 따라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해외는 성공 유지 사례 넘쳐… I♥NY은 45년째
도시마케팅의 대표 수단인 도시브랜드는 외국인의 해당 도시에 대한 이미지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자체의 도정이나 시정 목표를 나타내는 슬로건과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도시브랜드는 관광산업부터 투자유치, 문화,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번 정해진 도시브랜드는 일관성과 지속성이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일부 지자체는 당적이 바뀌어도 한 도시브랜드를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다. 부산시가 2003년 도입한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이 대표적이다. 부산시는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전 시장이 당선된 2018년 지방권력 교체와 함께 새 브랜드를 공모했으나 마땅한 문구를 찾지 못했고 결국 다이내믹 부산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다이내믹 부산은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시정에서 추진됐지만 오 전 시장이 부산시장 직무대행을 하며 탄생한 슬로건이었다는 점도 유지에 영향을 미쳤다. 박형준 시장도 이를 이어받고 있다.
제주도도 ‘온리 제주’(Only JEJU) 브랜드를 2009년부터 유지하고 있다. 제주도는 2014년 새로운 도시브랜드로 바꾸기 위해 용역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예산 낭비 지적에 따라 현재까지 Only JEJU 브랜드를 활용하고 있다.
해외 유명도시 역시 오랜 기간 같은 브랜드를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도시브랜드 우수사례로 잘 알려진 뉴욕은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그레이저가 디자인한 ‘아이러브뉴욕’을 1977년부터 45년째 사용하고 있다. 이 브랜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뉴욕시민들이 ‘아이러브뉴욕’을 구호로 도시를 살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브랜드를 활용한 공항 기념품부터 티셔츠, 포스터, 조형물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도 활발하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이 2004년 도입한 ‘아이엠스테르담’(Iamsterdam) 역시 도시를 대표하는 조형물과 각종 캠페인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국립 박물관광장에 위치한 해당 조형물은 많은 관광객이 사진을 찍기 위해 붐비는 사진명소다. 독일 베를린이 2008년부터 각종 캠페인에 사용한 ‘비 베를린’(Be Berlin) 브랜드 역시 현재까지 응용되고 있다. 붉은 색을 활용한 시각적 이미지는 ‘be OOO’ ‘OOO Berlin’ 등으로 활용된다. 베를린 관광의회도 이를 응용한 ‘Visit Berlin’을 사용하고 있다.

◆“정체성과 일관성이 브랜드 성공 안착 요소”
전문가들은 도시브랜드 성공을 위해서는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 역사, 문화, 경험 등을 따져 그 도시만의 차별적인 경쟁력을 알려야 사람과 자본을 결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희 경희대 교수(시각디자인학)는 “도시브랜드의 개발 및 브랜딩은 경제, 문화, 사회 등 다양한 정책부서가 도시 비전 달성을 위한 목표 아래 정교한 개발과 관리 시스템 아래 이뤄져야 한다”며 “도시브랜드는 도시의 가치와 일치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캠페인 등을 통해 오랜 기간 시민을 결집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우리나라 도시브랜드는 유효기간이 5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선거 때마다 몸살을 앓는 거 같다”며 “장소가 갖는 고유한 시간성과 공간성을 바탕으로 내·외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도시브랜드를 개발해야 하고 이를 지키고 관리할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브랜드 교체를 고려할 때 철저한 검증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정렬 영산대 교수(부동산·금융학)는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와 학술적인 평가 등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브랜드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까지 도시 정체성을 담지 못하고 본인의 치적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많이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파리 에펠탑처럼 랜드 마크가 뚜렷한 도시는 방문하지 않아도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도시적 이미지가 부족한 만큼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시브랜드가 중요하다”며 “도시 간 무한 경쟁 시대에서 브랜딩이 없는 도시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서울유’ 마케팅 활용 업체들 교체 땐 타격
“도시브랜드가 벌써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제품에 로고가 찍혀 나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바꿔야겠죠.”
서울의 도시브랜드 ‘아이서울유’를 이용해 마케팅하고 있는 한 건강식품 업체는 내년 서울시가 도시브랜드를 교체한다는 소식에 최근 긴급회의에 나섰다. 이 업체는 매장 외관과 제품 등에 아이서울유를 응용한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건강식품은 신뢰도가 중요한데 서울시 브랜드를 활용하면 대외적으로 인증 받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서울시 파트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 등에 브랜드를 활용하고 있다”며 “갑작스러운 교체 소식에 디자인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아이서울유를 활용해 의류를 만들고 있는 다른 업체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해당 업체 대표는 “이렇게 서울 브랜드가 빨리 교체될 줄을 몰랐다”며 “의류 대부분을 주문제작 형태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재고 피해가 크진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아이서울유를 사용하기 시작한 2015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에는 모두 29개의 조형물이 설치됐다. 여의도한강공원, 노들섬, 서울숲, 북서울꿈의숲, 어린이대공원 등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공원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잠실종합운동장, 김포국제공항, 시민청 등 시설까지 대외 홍보를 위한 조형물 조성비로 약 10억6000만원이 투입됐다. 높이 2m의 조형물 설치를 위해서는 약 1억원의 비용이 소모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브랜드 교체로 조형물 교체 비용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이러한 예상은 민간업체 입장에서는 한가한 접근법일 수도 있다. 아이서울유 도시브랜드 홍보에 투입된 매몰비용까지 고려하면 수십억원의 예산이 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해마다 아이서울유 파트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음식, 음악, 패션, 전시, 화장품 등 민간 업체들과 공동 브랜딩 사업을 진행했다. 시민공모로 탄생한 아이서울유는 ‘아이○○유’로 응용해 대외 활용이 가능하도록 기획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재임했던 지난해 1월 기존 도시브랜드 ‘세계 속의 경기도’를 ‘ㄱㄱㄷ 경기도’와 ‘GO GREAT, GYEONGGI’로 교체한 경기도의 경우 현재까지 브랜드 교체 작업에 8억8000만원이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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