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정의용 등으로 수사 확대될 듯
국방부·감사원 자체조사도 예고
국민의힘은 사건 전담 TF 구성
한변 “文 前대통령 살인죄로 고발”
박지원·서훈, 사건 책임자 지목
고발된 文정부 인사 20명 달해
朴 “文 지시 없었다” 의혹 부인

대통령실이 13일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 관련, “북송을 거부하는 장면이 (전날 공개된 사진에) 고스란히 담겼다. 반인도적·반인륜적 범죄 행위”라고 성토했다. 이어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사건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이 진상 규명을 공식화하면서 귀순 의사에 반해 북송이 이뤄진 과정과 이를 주도한 의혹을 받고 있는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김유근 전 1차장과 정의용 전 안보실장 등에 대한 감사나 사정기관 수사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강인선 대변인은 이날 용산 청사 브리핑에서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북송했다면 국제법과 헌법을 모두 위반한 반인도적·반인륜적 범죄 행위”라며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전날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을 강제로 북측으로 인계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통일부는 앞서 북한 주민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강제북송에 찬성했던 3년 전 입장을 뒤집고, “분명히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밝히면서 사진을 공개했다. 정부는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이 승선한 배를 나포한 지 5일 만에 배와 어민 2명을 북으로 돌려보냈고, 당시 이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북한에서 저지른 선상 살인을 이유로 추방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살인범이든 흉악범이든 우리 사법제도로 재판을 해서 확정이 되기까지는 무죄추정 원칙이라는 게 있으니 절차적으로 순리대로 처리했어야 한다”며 “행정적인 조사 잠깐 하고 추방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부분”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이 이날 강력한 진상 규명 의지를 보인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해당 사건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지 3주 만이다. 그 사이 국가정보원이 서훈 전 국정원장을 탈북 어민 합동조사를 강제 종료시킨 혐의 등으로 고발하고 문 정부의 청와대 국가안보실 개입 의혹이 짙어지는 등 북송 과정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이에 검찰에 고발된 서 전 원장과 정 전 실장 등으로 수사가 확대되고, 국방부·감사원 등 관련 기관의 자체조사도 함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날 이 사건을 전담할 별도 태스크 포스(TF)를 꾸렸다. 김용태 최고위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호했던 ‘페스카마호 사건’의 조선족과 탈북 어민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며 “문 전 대통령이 탈북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 답을 주실 때”라고 말했다. 페스카마호 사건은 1996년 조선족 선원 6명이 동료 선원들을 죽인 사건으로 문 전 대통령이 2심부터 변호를 맡았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이날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2019년 11월 강제북송에 대한 문 전 대통령의 최종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며 강제북송 책임을 들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살인죄·불법체포감금죄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탈북민 단체와 북한인권단체들도 이날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건에 연루된 그 누구라도 철저하게 조사해 가장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전 정부 겨냥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보복은 아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TF 소속 의원들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16명을 살해한 엽기적인 흉악범마저 국민으로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라며 “안보를 인질로 삼은 정쟁 시도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동료 살해 뒤 도주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군이) 사전에 인지했다”며 “스스로 월남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이들을 생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檢 ‘서해피격·강제북송’ 수사 전방위 확대
검찰은 13일 국가정보원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서해 공무원 피격 및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할 전망이다. 검찰 수사의 칼끝이 결국 문재인정부 윗선을 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의 국정원 압수수색은 이번이 네 번째다. 2005년 ‘X파일’로 불린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의 불법 도청 사건, 2013년 국정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2014년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증거 조작과 관련해 검찰은 압수수색을 벌였다. 다만 이번 압수수색은 사실상 임의 제출 방식으로 이뤄졌다.

박지원 전 원장과 서훈 전 원장은 두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된다. 박 전 원장은 서해 공무원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로, 서 전 원장은 탈북 어민 사건 당시 정부 합동조사를 강제 조기 종료시킨 혐의로 각각 고발됐다.
검찰의 수사 확대는 예고된 수순이다.
국정원 외에 국방부와 통일부, 합참 정보본부, 해양경찰청 등이 두 사건과 관계돼 있다. 여기에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민정수석실이 의혹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에 고발된 문재인정부 인사는 성명 불상자 3명을 포함해 20명인데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지난 11일 육군 대령인 윤형진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과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윤 과장을 상대로 최근 국방부가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씨에 대해 자진 월북이란 판단을 뒤집은 배경과 근거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과장은 지난달 16일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브리핑에서 “피살된 공무원(이대준씨)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해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고 밝힌 인물이다.
공공수사1부는 또 박 전 원장을 고발한 국정원 관계자들을 최근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통상의 (고발 사건 처리) 절차에 따라 필요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전 원장은 연일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문 전 대통령은 저를 국정원장으로 임명하고 2년간 어떠한 인사나 업무 지시도 없었다”며 재직 당시 청와대의 지시로 보고서를 삭제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원장은 “청와대에서 누가 지시를 하나”라면서 “그때 제가 국정원장 된 지 50일밖에 안 됐을 때라 저도 동서남북을 몰랐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자신을 고발한 데 대해선 “새 원장이 국정원을 ‘걱정원’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전직 원장을 조사하려면 법대로 감찰해 조사해야 하고 최소한 어떤 걸로 고발하는지 알려주는 예우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사건 당시 북한과의 핫라인 가동 의혹을 두고는 “제가 불리하더라도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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