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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존재만으로 우리의 삶, 더 풍요”

입력 : 2022-07-11 20:00:41 수정 : 2022-07-11 20:00:40
평창=글·사진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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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대관령음악제 빛낸 부부성악가 ‘최원휘·홍혜란’

최, 꿈의 무대 성공 데뷔 후 ‘코로나’
“세계적 성장할 기회 놓쳐 안타깝지만
가족과 함께 시간, 삶 소중함 알게 돼”

“대규모 음악제 기획한 손열음 대단해
임윤찬 등 젊은 연주자 쾌거도 뿌듯
누구나 클래식 즐길 환경 조성됐으면”
홍혜란(소프라노)·최원휘(테너) 부부가 지난 8일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 ‘시와 음악의 밤’ 공연에서 음악감독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왼쪽)과 함께 슈만의 가곡을 들려주고 있다. 강원문화재단 제공

“(국제 무대에서 더 인정받는 성악가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코로나19 때문에 살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가족들과 오롯이 함께 보내고, 새 생명(딸)이 태어나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소중함이 뭔지 다시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내면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한 단계 좀 성숙해진 것 같아요.”

제19회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열리고 있는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에서 지난 7일 만난 소프라노 홍혜란(41)·테너 최원휘(42) 부부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자신들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전했다. 이번 음악제에 새로 선보인 ‘시와 음악의 밤’ 무대를 만든 세계 정상급 성악가 부부에게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2월 3일 오전 11시쯤, 미국 코네티컷에 있던 최원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메트) 관계자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당일 오후 7시30분에 공연하는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의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알프레도 역 테너가 갑자기 목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사연이었다. 성악가라면 누구나 서고 싶은 ‘꿈의 무대’이자 특히 동양인에게 문턱이 더 높은 메트에서 ‘SOS’를 친 것이다. 최원휘는 급히 차를 몰아 뉴욕으로 갔고, 정신없이 준비해 메트 무대에 섰다. 데뷔 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선 기립 박수가,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선 호평이 쏟아졌다. 2011년부터 해외 여러 무대에서 알프레도를 맡아온 최원휘의 실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나흘 뒤 두 번째 무대도 마찬가지. 최원휘는 물론 임신한 몸으로 한국에서 남편의 공연 실황을 지켜본 홍혜란 역시 가슴 벅찼다. 2011년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 3대 음악콩쿠르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 우승을 차지하고 메트 무대에도 데뷔했던 홍혜란은 남편이 얼마나 어렵고 큰 일을 해낸 건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후 다음 작품 공연까지 2주 정도 시간이 나 2월 말쯤 귀국했는데 아내가 집 안 곳곳에 축하 풍선 붙여 놓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 놨더라고요.(웃음) 그렇게 큰 축하를 받고 다시 나가려는데 (코로나19 탓에) 극장이 줄줄이 문 닫아 못 나갔지요.”(최원휘)

“남편이 갑작스럽게 메트에 데뷔했는데 완전 성공적이었어요. 그게 연결되면 (앞으로 경력을) 쭉쭉 펼쳐나갈 수 있었는데….”(홍혜란)

홍혜란(왼쪽)과 최원휘

그렇게 부부는 많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족이 함께하며 재충전한 에너지로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3년 전 모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돌아온 홍혜란은 후학 양성에 힘쓰며 틈틈이 공연과 앨범 작업을 한다. 최원휘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주요 오페라 무대에 선다. 시간이 맞으면 가급적 함께 서는 무대를 꾸미기도 한다. 이번 음악제는 부부의 한예종 동문인 피아니스트 손열음(36) 음악감독 요청으로 참여했다. 부부는 손열음에 대해 “이렇게 큰 여름 클래식 축제를 기획하고 총괄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힘들어하는 티도 전혀 안 내고, 클래식 저변 확대를 위해 굉장히 노력한다”며 “대단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8일 공연에서는 손열음 반주로 로베르트 슈만 작품 ‘시인의 사랑’(최원휘)과 ‘여인의 사랑과 생애’(홍혜란)에 이어 ‘네 개의 듀엣(이중창)’을 함께 불러 갈채를 받았다. 특히 성악적으로 이중창을 하기가 쉽지 않아 가곡 무대에서 잘 불리지 않는 ‘네 개의 듀엣’은 부부가 직접 골랐다.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한 지 9년째에 나온 이 작품은 음악가 부부의 결혼 생활 여정을 담았다고 느껴져 자신들이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어려운 곡이었지만 많은 준비를 거쳐 최고의 부부 성악가임을 입증했다.

최근 밴 클라이번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 임윤찬(18) 얘기도 나왔다. 홍혜란은 “일단 한예종 학생이고 저랑 연주도 했던 윤찬이가 우승해 정말 기뻤고, ‘진짜 음악을 하는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윤찬이가 하루에 14시간 연습했다는 얘기도 엄청 부러웠다”고 말했다. 항상 음악을 생각하고 하루 종일 연습하고 싶은데 성악가는 목소리가 악기여서 욕심만큼 연습할 수 없는 게 아쉽다는 것이다.

부부는 아울러 임윤찬에 앞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7·시벨리우스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 첼리스트 최하영(24·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 〃) 등 젊은 연주자들의 뛰어난 성과로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반갑지만 국내 클래식계 저변이 여전히 허약한 건 아쉽다고 토로했다. 최원휘는 “살다 보면, 잘 못 느끼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 삶에 굉장히 풍요로움을 주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클래식 음악인 것 같다”며 “(임윤찬 신드롬 같은 계기를 통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누구나 쉽게 클래식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지금 두 사람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더니,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매일 함께 가는 ‘오래된 친구’”(홍혜란), “엄청 좋은데 다가가기는 어렵고 같이 있을 땐 좋은 ‘얄미운 친구’”라며 금실 좋은 부부가 활짝 웃는다. 최원휘와 홍혜란은 각각 오는 9월, 11월 서울시오페라단이 올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리콜레토’ 무대에서 남녀 주인공인 로미오, 질다를 맡아 관객들을 만난다.


평창=글·사진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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