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발표한 ‘2021 글로벌 동향 보고서’(Global Trends Report)에 따르면 박해와 분쟁, 폭력사태, 인권 침해 혹은 사회적 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일들로 발생한 강제 이주민(난민)의 수가 지난 10년간 해마다 증가해 1억명을 돌파했다.(2022년 5월 기준) 이는 유엔난민기구가 강제 이주민 수치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로, 전 세계 인구의 1%를 넘는 수치인 동시에 세계에서 14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 이집트의 국민 수와도 어깨를 견준다.
매년 6월20일은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로 2000년 12월4일 유엔 총회의 결의문 채택을 통해 공식적으로 지정된 국제기념일이다. 원래 6월20일은 지역 기구인 아프리카단결기구(OAU)가 아프리카 난민의 날로 기념해왔다. 난민의 수가 가장 많으면서 관대함을 보여준 아프리카와의 연대를 표하고, 더 많은 국가와 세계시민을 동참시키기 위해 전 세계 단위로 확장한 것이다.
법무부는 지난 21일 난민정책 기념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난민법 제정 10년, 난민협약 가입 30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의 권리 보장 및 사회 정착 지원을 위한 법률’(난민법)을 제정했으며, 1992년에는 모든 난민을 차별 없이 보호하기 위한 협약(난민협약)에 가입한 바 있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법무부를 비롯한 유엔난민기구 한국 대표부와 이민정책연구원, 난민 지원단체 등에서 10여명의 참석자들이 한국의 난민제도 발전 과정을 정리하고 정책 개선점 및 향후 추진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난민 수용을 위한 국내 여론 및 제도적 수준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공동 의장인 공화당 소속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은 “한국은 1951년 채택된 유엔 난민협약 당사국으로 92년 가입했지만 2001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난민을 인정했고 난민 지위 부여 비율이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유엔난민기구에서 11년 동안(2010~20년) 발표한 한국의 난민 지위 여부 결정 사례는 5만218건이지만, 이 중 인정한 사례는 전체의 1.3%에 불과한 655건이었다. 이는 주요 20개국(G20)의 19개 국가 중 18번째인 최하위권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한국은 한때 ‘난민의 나라’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중국행을 택했던 이들 중 일부는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4·3 항쟁 당시에는 정부의 박해를 피해 1만명이 넘는 제주도민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유엔한국재건단(UNKRA) 등이 국내 6.25 실향민을 위한 구호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유신과 군부독재 시절에도 정치적 박해를 피해 미국과 유럽으로 향한 난민이 존재했다.
이렇듯 과거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은 역사를 지닌 한국은 결코 난민과 관련 없는 국가가 아니다. 게다가 외교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각종 국제협약에 가입한 인권국가이며,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엔의 인권 고위직책에 다수 진출한 나라이다. 이러한 한국의 위상에 맞게 난민 관련 국제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사회·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난민에 대한 인식 재고 역시 필요하다. 난민이 더 이상 공포와 혐오, 편견의 대상으로 고립되어서는 안 되며, 집을 잃은 그들에게 존엄과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인류 역사상 그린란드의 빙원을 최초로 횡단하고, 1895년 북극 탐험사에 이정표를 세운 기록(북위 86도14분 지점 도달)을 수립했던 노르웨이의 탐험가 프리됴쇼프 난센(Fridtjof Nan´sen)은 생전 모험가로서 정치가로서 외교관으로서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현재까지 대부분 국가에서 위대한 탐험가로 먼저 기억하지만,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유엔 전신인 국제연맹의 초대 난민고등판무관을 지내면서 국적이 없는 난민들에게 ‘난센 여권‘을 발행하고, 총 45만명을 구제한 일이다. 이 업적으로 난센 자신은 1922년에, 그리고 국제연맹 산하 전문 기구인 난센 국제 난민사무소는 그의 사후인 1938년에 노벨 평화상을 각각 수상했다. 한 인물과 관련해 두차례의 노벨평화상 수여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난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은 인류애의 핵심적인 가치에 해당한다는 점을 상을 주관하는 노벨 재단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 여러 지역 난민의 목소리에 잊지 말고 귀 기울여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기대한다.

이예인 UN SDGs 협회 연구원 unsdgs.yein@gmail.com
*UN SDGs 협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 협의 지위 기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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