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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침입 ‘솜방망이’ 처벌… 여성·노인들은 떨고 있다

입력 : 2022-06-23 19:21:08 수정 : 2022-06-23 19: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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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범죄 증가세… 年 2만 건 육박
1인 가구 주 타깃… 성범죄·강도 노출

4~5월 주거침입 판결 절반 벌금형
대부분 100만원 이하 소액 대부분
18% 그친 실형은 전과자 대다수

법조계 “사법부, 기계적으로 처분
의도 명확할 땐 엄벌 선고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의 한 주점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당시 다른 자리에 있던 B씨의 제안으로 잠시 합석했는데 술자리를 마친 뒤 B씨가 계속 A씨를 뒤따라 온 것. ‘설마’ 하며 걸음 속도를 내던 A씨는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B씨도 후다닥 달렸다. 그는 A씨가 공동주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 따라 들어와 A씨 집이라고 생각한 곳의 현관문을 약 30분간 두드리며 소란을 피웠다. 공포에 떨며 숨 죽인 채 그가 포기하고 떠나길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A씨에겐 30시간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B씨는 결국 재판에 회부됐지만 처벌 수위는 생각보다 낮았다. 재판부는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죄책이 가볍지 않고 용서도 받지 못했다”면서도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주거침입 범죄가 증가하면서 성범죄 등 강력 사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주거침입 사건에 대해 대부분 가벼운 형벌을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의도가 명확해 보이는 범죄에 대해 수사 단계뿐 아니라 사법부에서도 형량을 엄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주거침입 사건은 △2018년 1만3512건 △2019년 1만6994건 △2020년 1만8210건으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1인 가구가 늘면서 여성과 노인 등이 무방비 상태에서 당할 수 있는 주거침입 범죄의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국내 1인 가구는 664만3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31.7%다. 2016년 539만8000가구에 비해 23%가량 늘었다.

1인 가구의 42.8%는 범죄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불안하다”고 답했으며, 가장 두려워하는 범죄로 주거침입(12.8%)을 꼽았다. 절도(10.9%), 폭행(10.7%)이 뒤를 이었다.

지난 6일에도 서울 마포구에서 한 남성이 귀가하던 여성을 몰래 쫓아가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이 여성이 골목으로 사라지자 달리면서 뒤쫓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이 문을 급하게 닫으면서 더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주거침입은 강도나 성범죄 등 중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미수에 그칠 경우 주거침입 혐의만 적용되고, 사법부도 대체로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 주거침입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데, 대부분 낮은 수준의 벌금형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일보가 주거침입 혐의로만 재판에 넘겨져 4월1일부터 5월20일까지 판결이 내려진 사건 40건을 분석한 결과, 22건(55%)이 벌금형에 그쳤다. 벌금형도 100만원 이하가 16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실형은 7건(17.5%)에 불과하고, 징역형 집행유예는 8건(20%), 무죄 3건(7.5%)이었다. 그나마도 실형을 받은 경우는 관련 범죄로 전과가 있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관련 범죄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한 사건들은 엄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폭력 사건 전문 이은의 변호사는 “행위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 의도 자체를 처벌할 수는 없다”면서 “다만 그 의도가 명확한 경우 주거침입 혐의에 실형을 선고하는 등 엄벌을 내릴 수 있는데, 그동안 사법부에서는 주거침입 문제를 기계적으로 처분했다. 검찰도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주거침입 사건은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 및 피해자가 느끼는 불안감을 충분히 고려해 수사 단계부터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주의를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거침입 혐의의 죄질을 높게 판단하고 형량을 상향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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