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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사라예보 신화’ 일군 천영석 前 탁구협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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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2 14:53:54 수정 : 2022-06-22 14: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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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천영석 전 대한탁구협회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1973년 당시 유고슬라비아(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에서 열린 탁구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여자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우승을 일군 ‘사라예보 신화’의 주역 천영석 전 대한탁구협회장이 2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1931년 출생한 고인은 일찌감치 탁구에서 두각을 나타내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1956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선수를 그만둔 뒤로는 지도자로서 국가대표팀 코치 및 감독을 역임했다. 1990년대 한국중고탁구연맹 회장을 지내며 수많은 유망주를 발굴, 육성한 것은 고인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특히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아 한국 탁구계를 이끌었다. 선수 출신이 회장이 된 것은 탁구협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고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라예보 신화다. 한국이 속한 자유진영과 소련 등 공산진영 간 냉전이 치열하던 1973년 공산국가인 유고 사라예보에서 열린 탁구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우리 여자 대표팀 코치로 단체전 우승을 일궈낸 공적 때문이다. 당시 한국 여자대표팀은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선수 등이 출전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낯선 나라였다. 6·25전쟁 참전국 정도만 한국을 알았고 정작 우리는 ‘새마을운동’의 기치 아래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온 국민이 안간힘을 쓰던 시절이었다. 자연히 세계를 제패한 한국 여자 대표팀의 쾌거는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경사였다. 사라예보에서 돌아온 한국 선수진은 5만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열린 서울시청 앞 환영행사, 당시 박정희 대통령 집무실이던 청와대 방문, 전국 곳곳에서 열린 환영대회 참석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문단의 거장인 박목월 시인이 “겨레의 장한 딸들이/ 이기고 돌아왔다/ 이국 중에서도 이국/ 유고슬라비아의 하늘 높이/ 태극기를 나부끼게 한”이라는 축시를 지어 찬사를 바칠 정도였다.

 

훗날 고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라예보 대회 참가를 위한 출국 직전 가족과 함께한 자리에서 딸로부터 “엄마, 저 아저씨 누구야?”라는 말을 들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전략을 짜고 또 선수들을 훈련시키느라 경기장에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이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고인은 “어떻게 보면 미련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선수들이 지옥 같은 합숙훈련을 하고 있는데 지도자인 내가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며 “다시 그런 상황으로 돌아가도 아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으로 부인 조정숙씨, 아들 천호성씨 등이 있다. 빈소는 분당차병원, 발인은 23일 오전 6시30분. (031)780-6170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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