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도 침착하게 고난도 곡 소화
배움 향한 열망 강해 재목이라 직감
콩쿠르 준결선 때 ‘초절기교 연습곡’
스승 셔먼에게 물려받은 음악적 유산
윤찬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감사
음악으로 위로 건네는 피아니스트 되길

“하지만 우승까지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콩쿠르에는 뛰어난 음악가가 많이 참여하고 음악에 대한 개개인의 관점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우승이 확정된 순간 너무 감격스러웠고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손 교수는 20일 세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같이 말했다. 손 교수 역시 2006년 캐나다 호넨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해 주목받으며 세계적 연주자로서 입지를 다진 피아니스트다.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를 지내다 2015년부터 모교인 한예종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중 ‘원석’ 같은 어린 임윤찬을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예종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문을 두드린 임윤찬을 눈여겨보고 뽑은 사람이 손 교수다. 임군의 어떤 모습이 그를 사로잡았던 걸까.
“오래돼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입학을 위한 오디션에서 12분 정도 연주하는데 남다르더라고요. 나이답지 않게 굉장히 침착하고, 어려운 패시지(악곡의 짧은 부분 혹은 악곡 구조상 중요 악상들 사이를 이어지는 경과구)가 많이 있는 곡을 치는데 전혀 흔들림 없이 몸도 아주 효율적으로 잘 쓰던 게 기억납니다.”
이후 임군을 직접 지도하면서부터 놀라운 재목임을 직감했다. 손 교수는 “정말 순수하게 음악을 대하고 저를 놀라게 하는 순간이 많은 학생이었다”며 초창기 겪은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제가 녹음했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CD를 들은 윤찬이가 자기도 치고 싶다더니 10번까지 악보 10개를 보고 와서 매우 잘 치더라고요. 그 어린 나이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중학교 1학년생이 어떻게 이 곡을 벌써 하려는 마음을 가졌는지 진짜 놀랐어요. 또 숙제를 많이 내주는 편인데 윤찬이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범위를 공부해오는 등 빨리 더 배우고 싶은 열망이 강했습니다. 한마디로 ‘물건’이었죠.”(웃음)
제자로 임윤찬을 발탁해 보람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에 스승은 “그런 생각보다 윤찬이하고 만난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한 인연”이라며 “내가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음악적 유산이 윤찬이한테 고스란히 전달된 것 같아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스승은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며 숱한 피아니스트를 길러낸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좌교수 러셀 셔먼(92)과 한국인 최초로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가 된 변화경(75) 부부다.
“제가 가끔 ‘이런 제자가 있다’며 윤찬이 연주 영상을 보여드리면 두 분이 ‘어떻게 이리 뛰어날 수가 있나’ 놀라시면서 ‘음악적인 손자’라고 생각하세요. 이번 콩쿠르를 준비할 때도 선생님들께서 ‘윤찬이가 잘 되는(우승하는) 게 음악계에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임윤찬이 콩쿠르 준결선(세미 파이널)에서 연주한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큰 호평을 받았는데 이 곡은 러셀 셔먼의 평생에 걸친 레퍼토리였다고 한다. 손 교수는 “세미 파이널에 들어가기 직전 윤찬이가 ‘오늘 연주는 미스터 러셀 셔먼에게 바치도록 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내 왔다”며 “어떻게 그 힘든 콩쿠르 와중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만큼 윤찬이는 (나의 두 스승을)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지만 자기에게 나름의 뿌리가 되어 준 것으로 여긴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클래식계의 주목을 받게 된 어린 제자가 어떤 길을 가길 바랄까. “윤찬이가 늘 추구한 대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의 독창적이면서도 자유로웠던 예술성을 본받아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음악의 힘으로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피아니스트가 됐으면 합니다.”
금메달 수상 직후 손 교수를 ‘위대한 선생님’으로 부른 임군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손민수 선생님은 종교다”라고 할 만큼 스승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대단하다. 거꾸로 손 교수에게 ‘임윤찬은 어떤 존재인가’라고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라고 했다. 나이와 세대, 스승과 제자를 떠나서 음악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얘기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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