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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 유골 빻는 의전단원… “우울증·트라우마 시달려”

입력 : 2022-06-20 18:40:11 수정 : 2022-06-20 18: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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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호국원 참배의전 주업무
실제로는 유골 이관까지 도맡아

변변한 방진복도 없이 분골작업
“건강검진서 스트레스 지수 최악”
“유골 망치질… 유족에 죄책감도”

80% “직무 불만족”… 절반 퇴사
“급여도 열악… 보훈처 처우개선을”
#1. 국가유공자를 안장하는 국립호국원 중 한 곳에서 의전단으로 일하는 A(28)씨는 국가유공자의 유골을 빻을 때마다 후회와 죄책감이 교차한다. 입사공고에 명시된 담당업무엔 분명 ‘유골 이관업무’가 없었는데, 막상 입사해보니 분골되지 않은 유골을 빻아 가루로 만드는 건 의전단의 몫이었다. A씨는 “이런 업무를 할 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입사했다”며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분골을 하다 보면 뼛가루가 유실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너무 죄송스럽고, 계속 이런 일을 하면 ‘나중에 벌 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고개를 숙였다.

#2. 또 다른 지역의 국립호국원에서 의전단으로 일하는 B(38)씨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B씨는 입사 후 6개월쯤부터 수면장애에 겪고 있다.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잠이 들더라도 오전 1~3시쯤 깨는 일을 4년째 반복하고 있다. 유골을 빻는 업무를 하다 정신건강이 악화한 탓이다. B씨는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는데, 입사 후 받은 건강검진에서 정신적 스트레스 지수가 ‘최악’으로 나왔다”며 “일을 시작한 뒤 우울증도 생겼고 감정기복도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12월 현충원·호국원 의전단에게 유골 이관 업무 시 입으라며 제공한 방진복. 국가보훈처노조 제공

호국보훈의 달인 6월. 호국보훈의 성지에서 일하는 의전단의 주업무는 현충원과 호국원의 참배행사 및 안장의식 때 의전을 하는 것이지만, 이들은 이와 동떨어진 업무로 인한 고충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제대로 분골되지 않는 유골을 직접 빻는 일은 물론 물이 꽉 찬 상태로 오는 유골을 직접 말린 후 가루로 만드는 일도 한다. 전문가가 아닌데 유골을 다루면서 유공자에게 적절한 예우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18년 1월 신설된 의전단은 대전현충원(35명)과 영천·임실·괴산·산청·제주호국원(각 17명)에 총 정원 120명이 배정돼 있다. 그러나 실제 인원은 퇴사자와 휴직자 등의 영향으로 이보다 적다.

각 지역 호국원이 의전단 채용공고를 내며 올린 담당업무를 살펴보면 의전단은 △참배행사·안장의식 의전수행 △현충문 교대식 진행 △현충문 참배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유골 이관업무는 적혀 있지 않지만, 실제론 의전단원들이 이를 도맡고 있다.

유골 이관업무는 화장된 상태로 온 유골을 현충원·호국원에 안장하는 것을 뜻한다. 원래 유가족이 유골을 화장해 분말 상태로 가져오는 것이 원칙이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선산에 묻혔다가 뒤늦게 현충원·호국원으로 이관되는 경우 두개골 등 뼈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 채 오는 경우도 많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뉴시스

국가보훈처노조가 최근 의전단 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81.4%)이 ‘현재 근로조건에 대해 매우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유골을 빻는 이관업무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의전단원도 40%나 됐다. 괴산호국원에서 근무하는 한 의전단은 “유골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 부득이하게 망치질을 할 때마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심지어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12월 의전단에게 유골 이관 업무 시 입으라며 제공한 방진복은 일회용 비닐옷이나 다름없었다. 의전단원들은 “비닐옷은 입어도 (방진)효과가 없어 그냥 안 입는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기피업무를 담당하는 데다 급여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낮다보니 퇴사율도 높다. 2018년 이후 5대 호국원에서 퇴사한 인원은 48명으로, 정원 대비 절반이 넘는(56%) 수준이다. 의전단은 같은 공무직 근로자인 실무원이 지급받는 월 13만원의 교통비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의전단이 신설될 때부터 이관업무는 의전단의 업무였다”며 “임금체계는 수당 등을 일괄한 연봉제라 실무원과 달리 교통비가 지급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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