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취업 컨설턴트 유모(37)씨는 전례 없는 취업난 속에서도 맞춤형 취업 컨설팅으로 특수를 누렸다. 유명세와 함께 소득이 크게 늘어난 유씨는 주변의 권유도 있고, 앞으로의 벌이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해 오랜 꿈이었던 포르쉐로 차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유씨는 리스와 렌트 중에 선택하기로 했다. 싫증났을 때 다른 차로 갈아타기도 쉽고, 차량의 유지와 관리도 쉽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상품 특징과 서비스는 비슷했지만, 유씨는 결국 렌터카를 선택했다. 이런저런 세금 문제를 짚어준 세무사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리스나 렌트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비중은 해마다 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리스 및 렌트 시장은 연평균 11%씩 시장이 커지고 있고, 국내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CAGR) 역시 14%나 될 정도다. 특히 2030 세대의 리스 및 렌트 비중은 2015년 16.2%에서 지난 해 31.9%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차를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경험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이러한 흐름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리스와 렌트의 정확한 차이를 알고 이용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지 않다. 앞서 살펴본 유씨 또한 리스와 렌트 중에 무엇이 본인에게 유리할 지 몰라 세무사를 찾았다고 한다. 렌트로 결정을 내린 유씨에게 건넨 세무사의 조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오랜 자동차 문화를 지닌 나라에서는 차량을 장기로 대여할 때는 리스, 단기로 대여할 때는 렌트라는 인식이 잡혀 있다. 실제 미국에서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최장 331일까지만 차량을 대여할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 렌터카를 빌려 여행을 하듯 우리나라 역시 관광산업과 연계된 단기 렌터카를 중심으로 렌터카 시장이 발전해왔다. 지금도 택시 등 영업용 차량에 면세가 큰 것처럼, 대부분의 단기 렌터카 역시 공항이나 관광도시를 기반으로 한 영업이라는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많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주요 공항이나 여행지에서 대여하는 단기 렌터카는 길어야 한 달 이내로 이용하기 때문에 관광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일반 개인과 법인들 사이에서 세금 측면에서 리스 대비 세제 혜택이 월등하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하면서 업무용으로 렌터카를 찾는 경우가 많아졌고, 좋은 제도가 악용되기 시작했다.
렌터카 사업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 자동차대여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렌터카를 관광업뿐만 아니라 업무상 출장, 카셰어링 등 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별도의 규제 없이 최장 5년이라는 장기간 대여가 가능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한 여신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렌터카에는 단기 사용이라는 확실한 전제가 깔려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장기 렌터카라는 기형적인 상품이 운영되고 있다”며 “장기 렌터카와 리스는 상품 성격은 거의 비슷한데, 각각의 상품에 대한 규제와 혜택은 차이가 커 불공정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씨와 같은 고소득 개인사업자들이 렌터카를 선택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세금이다. 사업용 차량을 리스나 렌트로 이용할 경우, 둘 다 비용처리가 가능하고 차량관리가 편하다는 비슷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개인 단위로 차량 이용 시, 자동차의 배기량에 따라 구매나 리스보다 렌트로 이용할 때 훨씬 더 큰 세금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자동차세의 경우 차량의 배기량에 따라 구매나 리스로 1600cc 이하 차량을 이용하면 최대 cc당 140원, 1600cc 초과 차량에는 cc당 200원이 부과된다. 반면 렌트 차량은 2500cc 이하는 최대 cc당 19원에서 2500cc 초과는 cc당 24원으로 세금이 훨씬 저렴하다. 배기량 2000cc의 차량을 렌트로 이용하면 직접 사서 탈 때보다 자동차세 부담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지방교육세 역시 구매 차량은 자동차세의 30%가 추가 과금되는 반면, 렌트 차량은 면제다. 이밖에 취등록세, 공채매입 할인가격 등을 모두 포함하면 혜택 차이는 더욱 커진다. 앞서 유씨가 선택한 포르쉐의 경우 4년 렌트로 활용 시 구매할 때보다 900만원 이상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이 같은 혜택은 차량 가격이 올라갈수록 더욱 커지는 구조여서 고가의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장기 렌터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미 고소득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고가의 수입차를 장기 렌터카로 활용하며 세금을 아끼는 방법은 널리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해 10월에는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한 인플루언서가 수억 원대의 슈퍼카 3대를 임차해 본인과 가족들의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렌트비, 유류비 등을 업무상 비용인 것처럼 위장했다가 국세청에 적발되기도 했다. 특히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 BMW 5 시리즈 등 최근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고급 수입차들 중 상당 수가 장기 렌터카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제도적 허점으로 정상적으로 걷혀야 할 세금이 제대로 징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세와 탈세는 한끗 차이다. 렌터카 이용 시 세제 혜택은 차를 이용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혜택이지만, 애초 취지와 달리 값비싼 고급 수입차의 세금을 낮추는 수단으로 악용될 때는 탈세로 변질된다.
장기 렌터카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편법적으로 빠져나가는 세금의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2021년 장기렌터카 신규등록 대수(19만9000대)를 구매나 리스로 이용했다면, 지방세로 1조원 이상(1조 853억원)을 거둘 수 있었다. 이는 2013년(2551억원) 대비 세수 손실이 4배 이상 커진 것으로, 장기렌터카 시장이 성장할수록 손실 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이 같은 세제 혜택은 장기 렌터카로 고가의 수입차를 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런 차량을 주로 취급하는 대기업 렌터카 업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생계형 중소 렌터카 업체를 위한 정책이 대기업 렌터카사의 배를 불려주는 정책으로 왜곡되어 있다.
또 동일산업과 동일규제라는 정책과 규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형평성 논란과 함께 해당 산업계는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국세청은 고액체납자 584명 중 법인 명의로 고가의 수입차를 사적으로 이용한 90명에 대한 추적조사에 돌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새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법인차량임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법인차량 번호판 색깔을 연두색으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국토교통부 고시를 개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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