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찾아 학대 피해 사실 밝혀
양부모 각각 징역 1년에 집유 2년 선고

2020년 12월 어느 날. 경남 김해의 한 지구대에 7살 정도로 보이는 앳된 아이가 제 발로 찾아와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신고했다.
19일 상담기관과 경찰, A군 변호인 등에 따르면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이던 A군은 “한겨울에 찬물로 목욕했다. 한 장 있는 이불로 절반은 깔고 남은 절반으로 덮고 잤다”고 경찰에 이야기했다.
또 부모가 자신에게 “너는 살 필요가 없다. 담벼락에 머리를 박아라. 산에 올라가 절벽에서 뛰어 내려라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A군 진술과 아동보호기관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김해 양부모 입양아 아동 학대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A군은 태어난 해인 2010년 입양돼 양부모 손에 컸다. A군은 엄마아빠라고 부르던 이들에게서 학대에 시달렸다. 처음 학대가 드러난 건 2017년이었다. A군은 처음에는 학대인 줄도 몰랐다. 그저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급기야 A군은 11살이 되면서부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원룸에서 지냈다. 집에서 밥은 한 끼만 먹었다고 했다. 제대로 된 보살핌은 기대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A군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어울리는 ‘생활’은 사치일 뿐 하루하루 ‘생존’도 벅찰 정도였다.
A군이 지내는 원룸에는 가정용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다. 양모는 A군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했다. 하지만 A군에게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통제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A군은 한겨울 원룸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다.
빨래를 말리기 위해 보일러를 틀어 놓을 때가 A군이 혼자 지내던 원룸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결국 A군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생인 A군은 키 135㎝에 몸무게 33㎏ 정도에 불과하다. 외형만 보면 10살 정도다. 그나마 양부모와 떨어진 이후 아동보호시설에 적응하면서 나아진 것이라고 한다.
A군의 정서적 충격은 더 심각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양모의 A군에 대한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을 지적했다. 아이의 건전한 인격 형성과 사회성 발달 기회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한 예로 A군은 양모에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우리 가족의 적”이라고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A군이 학대 여부를 조사하러 나온 아동보호기관 조사원의 팔을 물어뜯으며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이 조사원은 조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A군은 “이 일로 엄마가 라면을 끓여줬다”고 주변에 자랑했다. 적을 물리쳐 그 상으로 라면을 먹었다는 것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양모가 잘못된 지시에 잘 따르는 경우 라면을 보상으로 주면서 아이의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었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랄 수 없도록 학교와 또래 집단 등 정상적인 사회로부터 격리 시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A군 나이가 어린 점을 감안하면 이런 가해 행위는 신체 손상과 달리 정신 건강 발달에 영구적인 피해를 주는 매우 심각한 정서적 학대 행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군과 양부모를 영구 분리 조처하는 파양이 필요하다며 A군 양부모에 대해 강력 사건에 준하는 엄벌을 촉구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 같은 내용의 전문가 의견서를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A군 양부모 사건 담당 재판부에 제출했다.
지난 17일 이 사건을 맡은 창원지법 형사5단독 김모 부장판사는 A군 양부모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양부모에게 아동학대재범예방 강의 40시간 수강과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령했다.
양모는 재판부에 “사랑으로 A군을 키웠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양부모가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미성년자인 친딸을 부양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이 양형했다.
이 판결 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반발하고 나섰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A군 양모는 2017년 아동학대 신고로 보호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후 A군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있었지만, 학대는 그 이후부터 실질적으로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공 대표는 “양부모가 아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는데 재판부에만 반성문을 제출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재판부 역시 피해 아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의문스럽다. 이런 판결 자체가 아동학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의미로, 정인이 사건에 대한 교훈을 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도 이번 판결을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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