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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사의 뿌리는 ‘오리엔트·중동’

입력 : 2022-06-18 01:00:00 수정 : 2022-06-17 18: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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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아우르며 1만2000년 문명 중심축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오스만·무굴까지
15개 제국·왕국의 역사 면밀하게 추적
“그리스·로마문명도 오리엔트에서 파생”
기존 서양사 중심의 세계관 뒤집어 주목
터키의 국립이스탄불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희수 교수는 서양과 동양은 인류사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교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리엔트-중동이야말로 서양과 동양을 촘촘히 이어준 ‘중간문명’,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문명을 탄생시킨 ‘중심문명’이었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괴베클리 테페 발굴 현장. 휴머니스트 제공

인류 본사/이희수/휴머니스트/3만9000원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상류 지역에 위치한 터키의 도시 샨르우르파에서 북동쪽으로 18㎞ 정도 가면 하란고원 정상부가 나온다. 이곳에는 주변보다 약 15m 높은 반경 300m 안팎의 널따란 언덕 같은 곳이 있다.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의미의 ‘괴베클리 테페’이다.

1990년대, 한 농부가 이곳에서 밭을 갈다가 돌기둥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돌기둥을 파내서 살펴보니 꽤 정교한 무늬가 조각돼 있었다. 돈이 되겠다고 판단한 농부는 이를 시장에 내다팔려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마침 이 소식은 인근 지역에서 신석기 유적을 발굴 중이던 독일 출신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 교수에게도 알려졌다. 그는 농부와 함께 돌기둥이 발견된 장소를 찾아갔고, 이 일대에 신전 같은 것이 매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슈미트 교수가 이끄는 발굴조사단은 1994년부터 20년간 괴베클리 테페를 집중적으로 탐사하고 발굴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2014년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괴베클리 테페는 멀리 160㎞ 떨어진 곳에서도 참배하러 올 정도로 중요한 인류 최초의 신전도시였다. 현장에서는 제의를 위한 도살 흔적이 있는 동물 뼈가 대량으로 발견됐고, 여러 개의 돌기둥이 원형으로 열을 지어 서 있는 신전 구조물들도 20개가량 확인됐다.

이희수/휴머니스트/3만9000원

구조물들을 탄소연대 측정법 등을 사용해 분석한 결과, 아직 농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인 약 1만2000년 전에 세워진 것임이 밝혀졌다. 이는 아나톨리아 중부에 위치한 차탈회위크나 이스라엘의 예리코보다 약 2000년이나 앞선 문명을 의미했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신석기 시대 ‘언덕 위의 대성당’이었던 셈이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약 1만 년 전 ‘농경의 시작과 정착-도시의 건설-문명의 형성’이라는 ‘신석기혁명’ 이론 패러다임을 뒤집는 놀라운 것이었다. 종교적 의례가 농경보다 앞선 문명의 시발일 수 있다는 가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 중부의 도시 코니아에서 동남쪽으로 52㎞ 떨어진 곳에서도 약 9500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시대 거주지 차탈회위크가 발견됐다. 차탈회위크는 200여 채의 가옥이 있고 8000명 정도의 사람이 거주한 공동체 거주지로 드러났다.

터키의 국립이스탄불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는 책 ‘인류 본사’에서 아직까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괴베클리 테페 유적과 차탈회위크를 비롯해 아나톨리아 문명이야말로 3000년 뒤에나 나타나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문명의 뿌리와 모태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류 지역에 집중됨으로써 두 강의 상류지역, 즉 아나톨리아 지역이 거의 조망되지 못했다며 아나톨리아 반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명사적 의미가 되살아나면 트로이와 히타이트, 프리기아, 페니키아, 아시리아, 리디아, 메디아, 페르시아, 셀주크 튀르크, 오스만 튀르크 등이 좀더 실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의 문. 휴머니스트 제공

이 교수는 먼저 ‘인류문명의 뿌리’로서 아나톨리아 지역을 비롯해 오리엔트-중동 지역을 집중 검토한다. 즉, 아나톨리아 반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인류 최초의 문명을 발아시킨 역사의 본토였고, 신화·문자·정치·기술 등 인류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인 문물들을 창조해낸 문명의 요람이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오리엔트-중동은 인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만2000년 동안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중심지였고, 6400㎞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과 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주며 교류 발전을 주도한 문명의 핵심 기지였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이에 따라 초고대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히타이트·프리기아 등 고대 오리엔트 문명, 압바스 제국을 비롯해 7세기 이후 이슬람 왕국들의 역사를 거쳐 근대 오스만·무굴 제국의 성쇠까지 아나톨리아 반도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인도아대륙,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까지 아우르며 이 일대에서 일어나고 스러졌던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면밀히 추적해간다. 이를 통해 오리엔트-중동 세계의 1만 2000년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복원해낸다. 특히 그간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던 히타이트와 프리기아, 파르티아 등 오리엔트 고대 문명을 선명히 조명함으로써 끊어져 내려오던 인류사의 뼈대를 바로 세웠다는 평가다.

저자의 이 같은 시각은 세계사를 보는 패러다임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그간 그리스-로마에서 출발해 중세-대항해시대-르네상스-종교개혁을 거쳐 산업혁명과 근대 문명으로 귀결되며 세계사(世界史) 이름을 독점했던 기존 서양사나, 균형을 내세우며 중국사가 독차지하다시피 한 동양사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리스-로마 문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저자는 그리스-로마 문명은 인류의 뿌리이자 모태인 오리엔트에서 뻗어나간 줄기문명이라고 평가한다. 즉, 그리스의 모태문명인 크레타 문명은 남쪽의 이집트문명과 동쪽의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종합 해양문명이었다는 거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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