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나치가 없애려 한 리디체, 되레 反나치 상징 돼”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2-06-13 08:00:00 수정 : 2022-06-13 10:07:30

인쇄 메일 url 공유 - +

체코 총리, 리디체 학살 80주년 맞아 추모
‘우크라 침공한 러시아 우회적 비판’ 해석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리디체 학살 80주년을 맞아 추모관 앞에서 헌화 및 묵념을 하고 있다. 피알라 총리 SNS 캡처

“리디체(Lidice)를 없애려 했던 나치의 의도와 달리 리디체는 나치 만행의 세계적 상징이 되었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리디체 학살 80주년 추모식에서 한 말이다. 그는 “전체주의 정권이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고도 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꼬집은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피알라 총리는 이날 체코 수도 프라하 북서쪽으로 15㎞쯤 떨어진 곳에 있는 리디체 마을의 학살 추모관을 찾아 헌화하고 희생자들을 기렸다. 그는 “80년 전 이곳에서 나치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간 뒤 사형에 처해진 모든 이들에게 묵념을 바친다”며 체코 국민들을 향해 “그들의 기억을 존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점령된 체코는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으로 전락했다. 이 보호령을 다스리던 총독 대리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히틀러의 핵심 측근이자 나치의 실세였다. 원래 반(反)나치 성향 인사들을 붙잡아 처형하는 임무를 전담했던 하이드리히는 체코에 부임한 뒤로도 주민들을 어찌나 가혹하게 탄압했는지 ‘프라하의 도살자’로 불렸다.

 

1942년 5월 27일 하이드리히는 프라하 교외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폭탄 공격을 받고 크게 다쳐 1주일 뒤 사망했다. 영국에서 특수전 훈련을 받은 체코 저항군이 하이드리히 제거를 위해 벌인 일이었다. 분노한 히틀러는 즉각 보복을 지시했다. 폭탄 공격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리디체 마을이 저항군의 배후로 지목됐다.

 

1942년 6월 나치 독일이 주민들을 학살한 데 이어 건물들까지 모두 부숴 완전히 폐허로 변한 체코 리디체 마을 모습. 체코 방송사 CT24 홈페이지

그해 6월 9일 리디체 마을에 들이닥친 나치 대원들은 주민 중 남성 173명을 집단학살했다. 여성 50여명과 어린이 80여명은 강제수용소 등으로 끌려가 역시 처형되거나 영영 실종됐다. 집요한 나치는 마을에서 기르던 가축과 애완동물까지 모조리 죽였다. 그뿐 아니었다. “마을을 아예 흔적조차 없애야 한다”며 남은 건물들을 다 부수고 지도를 비롯한 모든 기록물에서 ‘리디체’란 이름 자체를 삭제했다.

 

바로 이 점을 의식한 듯 피알라 총리는 “나치는 지도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리디체를 없애려 했다”며 “그래서 그들은 완전히 잊혔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했다”며 “리디체는 나치 만행의 세계적 상징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리디체 마을이 있던 곳에 추모관이 세워져 매년 수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나치의 집단학살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미국·멕시코 등 여러 나라의 마을에 ‘리디체’란 명칭이 붙은 현실을 강조한 것이다.

 

피알라 총리는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정권이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도 했다. 전날 SNS 글에서 그는 리디체 학살을 추모해야 할 이유에 관해 “오늘날 러시아 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고 그 국민을 살해할 때 이와 유사한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를 나치 독일에, 우크라이나를 1940년대의 체코에 각각 비유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규탄한 것이란 해석을 낳는 대목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