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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의쉼표] 인생 선배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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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10 22:56:36 수정 : 2022-06-24 13: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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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문학 관련 행사에 참여하느라 어느 고등학교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학교로 향하기 전부터 괜히 마음이 뒤숭숭했다. 고등학생들, 십대 후반 청소년들을 만난다는 것이 현재 내 삶과 너무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어서다. 지난 십년간 내가 십대와 이야기해 본 적이 있나. 아니, 십대를 가까이에서 본 적은 있나. 그야 거리에서 숱하게 지나쳐가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지나쳤을 뿐 내 삶에서 그들은 완벽하게 분리돼 있었다. 나이 차이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서 나는 그들과 나 사이에 아무 교집합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학생들은 상상 이상으로 기발하고 엉뚱하며 재기가 넘쳐,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수시로 내가 어쩔 수 없는 ‘꼰대’임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한편 학생들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더없이 간절한 얼굴로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덕분에 나는 별 위화감 없이 삼십년 세월의 간극을 넘어 그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물었다. 인생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뜻밖의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인생 선배의 조언이라면 내가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나더러 해달라니. 너무 당황해서인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나갔다. 너희 때가 제일 좋을 때야. 공부만 하면 되잖니. 나중에 어른 되면 지금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같은 어른들 말씀은 다 거짓이라고. 공부만 하면 된다니, 공부만 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이 잔뜩 있는데. 게다가 그렇게 공부만 해도 대학 가기 힘든데. 그런데도 지금이 제일 좋은 때라면 뭐 하러 사나… 아니라고. 나중이 더 좋다고. 가장 좋은 것은 늘 앞날에 있다고. 그렇게 믿어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고.

 

횡설수설 길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맺었던가. 솔직히 내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에, 단지 몇년 더 살았다는 이유로 나와 아무 교집합도 없는 학생들에게 그런 주제 넘는 조언을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낯이 뜨겁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행사가 끝났을 때 몇몇 학생이 내 자리로 왔던 것을. 작가님, 정말인가요? 정말 나중이 더 좋은가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그러나 그렇게 믿고 싶은 듯했던 그 표정들을. 나는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해주었다. 꼰대라도, 주제 넘는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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