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입각 눈높이 설명
인류, 미지의 세계에 열광
우주 탐사 계기된 것 분석

마법의 비행/리처드 도킨스/야나 렌초바 그림/이한음 옮김/을유문화사/2만원
‘진화론’을 무기로 창조론과 종교에 맞서 싸운 리처드 도킨스. 2013년 영국에서 세계 제1의 사상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던, 당대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과학자 중 한 명으로서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이란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저자가 이번엔 ‘비행’을 화두로 진화생물학자로서 쌓은 탁월한 내공을 펼쳐냈다.
중력에 맞서 비행 능력을 발전시켜 온 생물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그의 신간 ‘마법의 비행’은 ‘비행은 어디에 좋을까’, ‘비행이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 왜 일부 동물은 날개를 버렸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전문 지식을 쉽게 풀어서 전달해 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도킨스의 최대 장점은 글솜씨.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하면서 간결한 설명으로 하늘을 나는 행위가 주는 이점과 단점을 분석한다.
날개가 주는 이점은 명확하다. 땅 위 포식자를 피해 하늘로 달아날 수 있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먹잇감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땅 위에서 사는 동물은 왜 진화의 역사에서 날개를 버리거나 새로 만들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날지 않아서 가능한 신체 허용 중량 증대가 주는 이점이 크다. 조류에 비해서 새끼들을 한 번에 많이 낳아서 기를 수 있다. 한두 마리만 낳는다 해도 거의 성체에 준하게 뱃속에서 키운 다음 출산해도 문제가 없다. 반면 조류는 여러 개의 알을 낳긴 하지만 몸을 가볍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몸속에서 지니는 알은 한 번에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차적으로 알을 모두 낳은 다음에야 비로소 부화의 과정을 거친다.
조류와 인간이 만든 비행기가 유사한 이유도 단순하다. 하늘을 나는 이상, 중력이나 유체역학처럼 동일한 물리적 법칙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생물과 무생물이라는 근본적인 차이에도 문제의 해결책은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활강이 아닌 동력비행으로서 도킨스는 먼저 자전거 페달 방식으로 프로펠러를 돌려 1979년 영국 해협을 횡단한 폴 맥크리디의 ‘고서머앨버트로스’ 사례를 자세히 설명한다. 노련한 자전거 선수의 다리 힘만으로 영국해협을 건너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단 한번에 그쳤다. 극한의 무게 감량 덕분에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하고 싶어 했던 인력 비행에 어렵게 성공한 것이다. 이어지는 동물의 동력비행은 수면 위를 달리다 이륙하는 옥스퍼드 운하의 백조로부터 척추동물보다 2억년 앞서 공중을 정복한 곤충들까지 다양하다.
진화론자로서 일생을 창조론을 공박하는 데 바친 노학자의 태도는 신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완전하지 않은 날개를 지닌 중간 단계 동물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데 온전히 한 장을 할애한다. 2분의 1이 아니라, 4분의 1, 심지어 10분의 1짜리 날개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는 점을 설명한다. 날뱀은 갈비뼈를 늘리는 방식으로 날개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나뭇가지 사이를 활공한다. 반쪽짜리 날개라 할 수 있는 다람쥐의 복슬복슬한 꼬리는 좀 더 먼 나뭇가지까지 도약할 수 있게 해 준다. 날뱀이나 다람쥐 모두 유사한 종의 다른 경쟁자들보다 조금 더 멀리 날 수 있었던 탓에 포식자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 남길 수 있었다.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는 수준까진 아니어도 대가의 비범한 통찰력이 대중 눈높이에서 펼쳐지는 ‘마법의 비행’ 마지막 장은 ‘외향 충동’, 즉 우리는 왜 날아가려 하는가에 할애된다. 화성, 목성을 탐험하고 정복하려는 인류의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무려 1억7500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 우주에서 날아온 바윗덩어리가 부닥친 충격에 전멸된 당시, 포유류는 간신히 살아남았고 인간은 그 생존자들의 후손이다. 천문학적인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위협적인 소행성이나 혜성을 다른 궤도로 밀어내는 등 이에 대비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지구 바깥에 새로운 정착지를 세워두는 것이다. 동식물이 현재의 안락한 곳에서 멀리 떨어진 미지의 세계로 자식을 보내려는 외향 충동이 현재 우주 탐사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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